국내선 입법 단계…영미권선 인정 추세

법학계나 실무자들 사이에서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은 별도의 조문을 두지 않더라도 헌법과 변호사법상 비밀유지의무 조항을 근거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2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변호인-의뢰인 특권에 의해 동의가 없는 압수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이 문제는 입법의 영역으로 넘어간 상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변호사법 개정안에는 ‘누구든지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리에 이뤄진 의사교환 내용, 또는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작성한 법률자문 등 자료에 대해 공개를 요구하거나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조문이 포함돼 있다. 다만 이 경우도 ‘의뢰인의 승낙이 있거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하는 단서를 달았다. 법이 통과된다면 현재 로펌이 가진 정보를 활용한 수사가 가능한 ‘원칙’이 ‘예외’로 바뀌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일반 절차로는 검찰이 로펌을 압수수색할 수 없고, 미연방검찰총장이 별도로 정한 규정에 따라야 한다. 로펌에 구체적으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물이 있다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이 때에도 압수물 중 로펌의 비밀유지가 필요한 부분을 ‘필터링’하는 과정을 따로 거친다. 지난해 롯데수사에서처럼 서류를 일괄적으로 받아간 뒤 수사에 쓰일 자료를 추출하는 우리 수사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독일 역시 변호사 사무실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고, 프랑스도 변호사와의 의사교환 내용을 ‘직무상 비밀’로 보호하고 있다. 다만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2009년 독점금지법을 개정하면서 변호사의 의뢰인 비밀 보호권(Attorney-Client Privilege·ACP) 도입을 검토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변호사업계에서는 변호사 비밀유지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재판을 받을 때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외 기업은 자국법에 의해 회사와 변호사간 의사교환 내용이 두텁게 보호되는 반면, 우리나라 기업은 ‘준거법’인 대한민국 법률이 감안돼 상대적으로 기업 비밀이 쉽게 노출된 불리한 환경에서 소송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식 법무법인 한결 대표변호사는 “입법 전이라도 법원은 수사편의주의에 의한 검찰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영장 신청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개별 판사에게 맡기지 말고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좌영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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