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학문 신뢰성 스스로 깬 ‘교수 자녀 공저자 등재’

올해 1월 한 대학의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가 2년간 인분을 먹이는 등 갑질과 폭언, 폭행이 폭로돼 세간의 공분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지난해 8월에는 수도권 사립대 지도교수가 대학원생들의 장학금을 가로채고 논문 심사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물론 교수들의 각종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고도 이를 폭로하지 못하고 참고만 있는 대학원생이나 조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학원생들이 교수들의 범죄에 가까운 폭력에도 잠자코 있는 건 교수들이 자신의 학위 논문 심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천만원의 등록금을 들여 청춘을 바쳐 걸어온 학문의 결실이 논문이기에 인격적 모멸도 감수하게 만든다. 물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그만큼 논문이 예비학자들에게는 자존심의 표상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논문에 자신의 중ㆍ고등학생 자녀 이름을 슬쩍 끼워 넣은 교수들이 무더기로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단순 정책보고서나 연구보고서에 아이디어를 낸 차원이 아니다. 주요 대학 전임 교수들이 한해 한편 쓰기도 힘든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최상위 학술지에 발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학생들은 고교 시절 적어도 한편 씩 SCI 학술지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2~4편씩 이름을 올린 학생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관련 분야를 10년 이상 연구한 박사급을 넘어 주요 대학의 전임교수보다 연구 실적이 더 좋다. 


자녀들의 이름을 공저자나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교수들은 한결같이 “연구에 공적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올렸다”고 변명했다. 아들 딸이 본인의 실험에 많은 도움을 줬다거나 고등학생 캠프나 멘토링을 통해 자신이 지도해 나온 결과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그 교수의 가족 말고는 없을 것이다. 석사과정을 밟으며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학술지라도 논문 게재를 시도해본 연구자들이 본다면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을 코미디다. 일단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의미가 있는 학문적 질문을 던지고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진 현상 중에서 비교의 등가성을 확보해 과학적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학문적 사고방식을 체득하는, 기초적 단계를 갖추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연구자들 사이에는 “앞선 거인들의 어깨를 딛고 서서 기존 연구에 손톱만큼의 새로운 발견을 더하는 것이 학자로서의 최고의 목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 연구자들 앞에 방학동안 잠시 잠깐의 실험이나 프로젝트로 SCI나 SSCI 급 논문을 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양심을 속이는 일일뿐 아니라, 동료 학자들을 모욕하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타고난 영재라서 일찍부터 학문적 재능을 꽃피웠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특수이해관계자인 부모와 자식 간에 교신저자나 공저자라는 형식으로 논문 게재에 도움을 주는 것 자체가 연구 윤리에 반하는 일이다. 오히려 타고난 학문적 재능을 가진 자녀라면 편법으로 손쉽게 연구 성과를 달성하며 연구의 정직성을 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엄격하게 지도하고 제 3자의 연구 지도와 논문 심사를 통해 성취의 계단을 오르도록 하는 것이 선배학자이자 부모 된 도리가 아닐까.

물론 우리 모두는 해당 교수들이 그런 편법을 쓴 이유를 모두 짐작한다. 날로 확대 일로에 있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통한 대학입시에서 자녀에게 남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기회를 주고 싶은 부모로서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이미 알려진 학자로서의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자녀에게 학자로서의 성과를 손쉽게 쥐어주는 것은 사교육에 수천만원, 수억을 퍼부을 수 있는 부유층도 감히 꿈꾸지 못하는 일일테니 유혹도 컸을 것이다.

결국 해당 교수들은 사적인 욕심을, 사회적 양심과 학자로서 연구 생태계를 건강하게 가꿔나갈 책무에 앞세운 것이다. 학계가 이들을 발본색원해 단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연구자도 연구 윤리를 지켜가며 정직하게 연구할 것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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