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0년 ⑥진보 10년, 보수10년…다시 출발선 韓경제] ‘빚내 집사라’ 20년 이은 불패 고리…文정부 끊어낼까

DJ때 규제완화 통해 경기부양
집값 폭등에 막판 대출 옥죄기
盧정부 ‘투기와의 전쟁’전면전
주택공급 부족에 ‘백약이 무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축
MB때 ‘7·4·7’내세워 규제 풀어줘
박근혜 정부도 경기부양에 올인
뒤늦은 대출규제 ‘풍선효과’불러

文정부 가계부채 잡기 일단 성공
“정책효과 조절 장기접근 바람직”

2013년 7월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하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가계부채 정책 청문회’를 열었다.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과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지만, 여야 간 ‘네 탓 공방’만 치열하게 펼쳐졌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실책’을 질타했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김대중 정부의 카드규제 완화와 노무현 정부 책임론을 집중 제기했다.

올해 10월 국회 기재위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도 4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1400조원을 넘은 가계부채 문제의 책임이 박근혜 정부의 금리 인하 정책에 있다는 여당의 공격과, 노무현 정부 시절 가계대출 증가율이 더 높았다는 야당의 반격이 팽팽히 맞섰다. 여야 입장만 바뀌었을 뿐 문제의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는 주장은 그대로였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경기 부양’이라는 목표와 ‘가계부채’라는 부작용 사이에서 끝없는 고민을 해왔다. 경기를 살리려고 규제를 풀면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규제를 강화하면 경기 회복의 불씨가 미약해질까 우려되는 ‘딜레마’에 빠졌다. 민주 정권과 보수 정권이 10년씩 집권했지만 이 딜레마는 그 누구도 시원하게 해소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1998년 취임 직후부터 주택 양도소득세 감면,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청약요건 완화 등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 결과 재임 기간 전국 아파트값은 38%, 서울 아파트값은 60%나 뛰어올랐다. 집값 상승으로 대출 수요가 급증하자 2002년 9월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을 도입, 집값의 60%까지로 대출한도를 축소하는 ‘LTV 60%’ 규제를 의무화했다. 주택담보대출에 개인신용평가를 요구하는 등 건전성 강화에도 나섰다.

그러나 달아오른 투자심리와 대출수요가 쉽게 잡힐 리 만무했다. 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CCSI) 조사를 보면 김 전 대통령 취임 첫 해인 1998년 1분기 8이었던 부동산구매계획CSI는 퇴임 직전인 2002년 4분기에 14까지 올랐다.

노무현 정부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면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였다. 종합부동산세 신설, 양도소득세 강화, 분양권 전매제한, ‘버블 세븐’ 지정 등 5년 간 12차례나 대책을 내놨다. LTV를 40%까지 낮추고 총부채상환비율(DTI)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서울 집값이 되려 56% 뛰는 등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수요 억제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공급 부족에 의한 주택가격 상승을 놓친 것이 실패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은 규제 완화로 방향을 틀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7ㆍ4ㆍ7 정책’(연평균 7% 성장ㆍ국민소득 4만달러ㆍ세계 7대강국 진입)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전매제한 기간 완화, 강남3구를 제외한 투기과열지구ㆍ투기지역 해제 등 부동산 규제를 풀어줬다. LTV를 70%로 완화하고 무주택자와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는 DTI 적용을 배제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빚 내서 집 사라’는 식의 대대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놨다. 최경환 당시 부총리는 취임 직후인 2014년 7월 “(부동산 규제가)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은 격”이라며 LTVㆍDTI 규제 비율을 70%, 60%로 완화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같은해 8월(2.50→2.25%)부터 지난해 6월까지 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1.25%포인트 인하하자, 가계부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가파른 증가세에 놀란 정부가 지난해 2월에야 부랴부랴 은행권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지만 제2금융권 대출,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까지 잡지는 못했다. 그 결과 2013년과 올 3분기 사이에 가계부채 증가액 규모는 400조원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는 LTVㆍDTI를 40%로 강화하고 신(新) DTI, 총체적상환능력심사제(DSR) 도입을 추진하는 등 초강력 규제를 내놓으며 노무현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는 모양새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대출 급증의 원인이었던 초저금리 기조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에 돈을 빌리려는 가계가 점차 줄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5월부터 지난달까지 현재가계부채CSI는 월평균 103을 기록, 이명박 정부(106), 박근혜 정부(104)보다 하락했다. 6개월 뒤에 대한 가계부채전망CSI도 98로 박근혜 정부(99)보다 낮아졌다.

문제는 과거 정부를 통해 ‘규제 이후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학습효과와 ‘부동산 불패’ 신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가 지난 3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인 투자자 중에서 “여윳돈이 생기면 주택 등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는 응답이 16%로 은행 예금(1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8ㆍ2 부동산 대책, 9ㆍ5 대책, 10ㆍ24 대책 등 연이은 규제에도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여전한 것이다. 이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겠다는 정부의 목표 달성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공급’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이 12%였지만 올해는 9% 정도로 하락하고 내년에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금까지 발표된 정책들의 효과를 충분히 지켜보고 조절해 가며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장에 과도한 충격을 주는 것보다 시장이 적응할 수 있게 시간을 줘야 한다”면서 “지금보다 더 강력한 규제는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승연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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