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인권위에 “양심적 병역 거부, 국제적 기준과 대안 제시” 주문

-5년 9개월만 특별 보고 재개
-인권위, 6월 국방부에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
-‘기본권 강화, 차별금지법 완비’ 등도 보고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상임위원들과 비공개 오찬을 하며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 같은 사안의 경우 국제 인권 원칙에 따른 기준과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찬에서 문 대통령에게 특별 업무보고를 올렸는데 5년 9개월 만에 특별 보고가 이뤄진 것이다. 인권위의 위상을 높이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드러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이 위원장, 이경숙ㆍ최혜리 상임위원과 오찬을 겸한 특별 업무보고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문 대통령은 인권위가 존재감을 높여 국가 인권의 상징이라는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며 “한동안 침체되고 존재감 없었던 만큼 뼈아픈 반성과 함께 대한민국을 인권 국가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다짐으로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과 오찬을 겸한 특별 업무 보고를 진행하며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 같은 사안의 경우 국제 인권 원칙에 따른 기준과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사진=헤럴드경제DB]

문 대통령은 또 “인권위가 국제 인권 규범의 국내 실행을 담당하는 기관인 만큼 국제 기준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권고를 많이 해달라”며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과 같은 사안의 경우 국제 인권 원칙에 따른 기준과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을 거론해 눈길을 끈다. 인권 기구인 국제엠네스티는 사상, 양심, 종교, 신념 등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젊은이들에게 불필요한 징역 처벌을 중단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해 1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경우가 올해만 30건 이상이지만, 번번이 항소심과 최종심에서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하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 6월 상임위원회 의결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대체복무제 도입 계획 수립 이행을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고, 국회의장에게는 국회에 발의된 병역법 개정안(3건)을 조속히 보완하라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 도입 등 대안에 대해 병역의무자의 반발이 거세 매번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고 있고, 엄중한 한반도 안보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지난 2015년 12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 퍼포면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사형제의 경우 한국은 10년 이상 사형제를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 37개국 중 하나로 분류된다. 국제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하는 추세여서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한 국가는 100개국이 넘는다.

이와 함께 이날 이뤄진 특별 업무보고는 지난 5월 취임 직후 문 대통령이 ‘특별 보고를 재개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5년 9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 업무보고는 2012년 3월 이명박 정부 시절 이뤄진 뒤 박근혜 정부 기간 중단됐다.

이 위원장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사회권 등 기본권 강화와 지방 분권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 ▷인권기본법, 인권교육지원법, 차별금지법 등 인권 관련 기본법 체계 완비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장과 차별 배제 혐오에 관한 개별 법령 정비 ▷위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을 제도화하기 위한 인권 보장 체계 구상 등을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인권위의 구상에 적극 공감을 표시하고 인권위가 인권기본법, 인권교육지원법 등 법 제도 마련에 주도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했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군 인권 보호와 관련해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전이라도 인권위 내에 군 인권 보호를 위한 조직을 신설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부터 인권위 내에 군인권보호관을 신설하여 군 가혹행위, 폭력 등 장병 인권 침해를 방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또 “인권위 권고 사항을 각 정부 부처가 이행할 수 있도록 기관 평가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적극 알려주시면 이를 챙기겠다”고 말했다. 취임 초부터 정부기관의 인권위 권고 수용률 제고를 주문해온 문 대통령이 이를 다시 언급함으로써 인권위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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