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태의 일상 속으로] 그 흔한 가벼움도

트럭이 없는 지인의 검정색 비닐봉지에 가득 채운 재활용 페트병과 각종 음료수 캔. 공사현장에서 뜯어낸 알미늄 창문틀과 구리 파이프 등 폐품을 차에 가득 실었다. 한국에서는 분리수거로 청소차가 가져가 버리지만 이곳 미국 LA에서는 홈리스는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부엌이나 뒷뜰 한귀퉁이 공간에 마시고 버리는 각종 유리병과 페트병을 모아두고 있다. 별 거 아닌 것같아도 쏠쏠하게 부식값 정도 충당할 수가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쉽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말처럼 길에 떨어진 1센트 짜리 동전도 우습게 안보고 나는 줍는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부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구슬꿰기, 전자부품 조립하기, 봉투접기 등 부업을 했다.

늙었든 젊든 간에 돈이 없으면 기가 죽고 서럽다. 53세쯤 되면 직장에서 명예퇴직이 시작된다. 법적으로는 퇴직연한이 60세이지만 치고 올라오는 젊은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고 회사 운영 상 중견간부 한사람이면 신규 직원 두명 정도 채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무 경력과 사회물정이 풍부한 60,70세도 아르바이트를 원한다. 요즘은 살림분가를 안하거나 분가를 했어도 자녀 교육과 주택난 때문에 캥거루족이 되어 부모에게 얹혀 사는 자녀가 늘어나고 있다하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들 군것질 용돈을 마련하려는 심정이기도 하다.

빛나는 노후를 위해선 돈은 없더라도 빚은 없어야 한다. 그러한 나는 자식들에게 용돈을 준 적도 없고 받은 적도 없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돈을 주면 일단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는 걸 안 받으면 용돈이 필요 없고 오히려 가진 돈이 많으신가 여겨 아예 일절 모른 척한다고 한다.

자식에게 전재산을 모두 주고나니 모르쇠하는 자식들에게 괄세까지 받아온 부모들이 불효소송까지 제기하는 씁쓸한 현실을 신문지상이나 방송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65세이상 시니어들은 지하철 무료 승차권을 받긴 해도 지하철 입구마다 광고 스티커 붙이기, 서류 등 잔심부름 하기, 사회경험을 이용한 서류 수속 대행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불확실 속에 사는 오늘날 사회는 결함투성이이지만 그 속에서도 기쁨이 숨어들어 있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것같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고 노력해야 한다. 거울을 보면 볼 수록 하얀 머리카락이 자주 드러날 때마다 좀 더 알차게 값지게 보낼 수 있는 물질적 추구를 하게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곤란한 순간은 언제인가하면 자기를 맨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을 버리고 죽음의 암혹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때인가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이도시. 천사의 도시라 불리지

헌데 지금껏 천사를 본적도 없고 어디에 있나 살펴보고

그리워 해 본적도 없다.

다만 내가슴엔 안타깝게 그리운건

내 어릴적 느껴본 야리 야리한 손에

엄마의 풍만한 젖가슴이 더 그리운 밤이다

시원한 물살같은 간지럼도 느끼지 못하고 뜨겁게 끓는

육체가 없는 뛰어놀 수 없는 유령같은 천사는 싫다

이 도시 이 건물

묘하게 잇따라 아무렇게나 하늘로 금을 그어놓은듯 보이는

시선 아래쪽 토해내는 한숨같은 낙서 투성이다

일터로 나가는 이방인들 마트카트에

리싸이클링 캔과 페트병 봉지를 주렁 주렁 매달고 가는

엉덩이 바지를 걸치고 가는 홈리스들

퇴색된 건물 복도 마다 갖가지 토속적인 냄새를 풍기며

설거지하는 여인네들

이 거리 살아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김없이

찾아드는 저녁 풍경과 밤

따뜻한 육체는 있으나 사랑은 없다

그 또한 마음 뿐 쉬어 누으면 그만큼 고통만 가중 되는

이 도시

천사 없는 이 도시의 출입하는 통행증과 인식표를 갖기 바라는

구속 때문에 지쳐 무너 내려져 죽을 것같은 상황에서도

허탈하게 웃어져 가는 내모습

더 어찌 해볼 수없고 일어날 것도 없는 공황속 이밤

에테르 처럼 떠있는 도시 천사의 도시 속에

슬픈 눈망울이 되다

– 자작시 <천사의 도시 속에 슬픈 눈망울>

바람에 날린 눈송이 쌓여서 나무가지를 부러뜨리고 방울방울 처마 끝에 떨어지는 물바울 하나가 대리석 바닥을 파여내 듯 그 흔한 가벼움이 삶의 무게를 덜어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는 우리네 속담처럼.

이상태(핸디맨)

이상태/시인·핸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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