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최석호 서울신학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걷기여행, 한국관광 새 역사를 쓰다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을 차지하기 위해 소련과 나치독일이 1939년 8월 23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비밀협약을 맺는다. 발트 3국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나라를 잃은 이들 세 나라 국민 670만 명 중 200만 명이 길에 나선다. 비밀협약을 맺은 지 50년이 되는 1989년 8월 23일 라트비아 리가 구 시가지에 있는 라이마 광장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리투아니아 빌누스 위로는 에스토니아 탈린까지 600킬로미터가 넘는 길 위에 인간 띠를 만든다. ‘발트의 길’(The Baltic Way)이다. 저녁 7시가 되자 서로 손을 맞잡고 발트의 길을 만든 세 나라 국민들은 일제히 자유를 외친다.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세 나라 국민들이 1989년 발트의 길에서 부른 자유의 노래는 전 세계로 울려 퍼진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1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립을 되찾는다. 발트의 길은 2009년 7월 31일 193번째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s Memory of World Register)에 등재된다.

지난 겨울 우리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 세종대로 위에 섰다.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국정농단의 어둠을 촛불로 밝혔다. 이제는 광화문 촛불길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할 차례다. 그렇다. 길 위에 서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2007년 제주 올레길을 처음 열었을 때 한 해 동안 3000명의 걷기여행객이 올레길을 걸었다. 4년 뒤 2011년 올레길을 걸은 여행객은 100만 명을 넘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매년 10대 히트상품을 선정하고 있다. 2009년에는 도보체험관광을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했다. 2007년 산림청에서 국가숲길을 조성하기 시작한 이래로 2009년 문화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2010년 국토부 누리길, 2011년 안행부 누리마을 녹색길 등 걷기여행길 조성사업이 줄을 이었다.

지방자치단체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서울시 종로구 골목길, 순천 꽃길, 안동 유교문화길, 목포 생명길, 강화 나들길, 부산 이바구길, 춘천 물레길 …. 걷기여행길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자 2013년에는 걷기여행길 종합안내포털(koreatrails.or.kr)을 개설해 전국 480개 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2017년 현재 517개로 불었다. 내년부터는 걷기여행길과 자전거여행길을 두루누비(durunubi.kr)로 통합해 운영한다.

2017년 5월 문화부는 처음으로 걷기여행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4000명 응답자들 중에서 놀이공원으로 놀러가는 것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8.4%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작은 수치다. 그러나 걷기여행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66.0%로 가장 많았다. 걷기여행에 나선 사람들은 하루 평균 81711원을 쓴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국민 1회 평균 여행지출액 60731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향후 걷기여행 의향을 묻는 질문에 87.1%가 다시 걷겠다고 응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걷기여행을 추천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이보다 많은 88.7%에 달했다. 걷기여행이 한국관광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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