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동장군과 춤을’

2018년 1월. 그는 확실하게 미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4~2017년 1월에도 그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 존재감은 미미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기세등등한 그의 모습에 모두 벌벌 떨었다. 그는 다름 아닌 동장군(冬將軍)이다.

동장군이 나타나면 기온은 뚝 떨어지고 칼바람이 휘몰아친다. 필자 가족이 살고 있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의 경우 1월 들어 사흘 중 이틀은 두 자릿수 영하의 날씨(기상청 동네예보)를 보였다. 그 중 7일은 영하 20~25도를 기록했다. 이웃한 서석면과 내면은 더 추웠다. 체감온도는 30도를 넘나든다.

이쯤 되면 집과 창고 등 각종 시설물은 일제히 비명을 내지른다. 필자 가족의 다용도 창고 1층 화장실은 수세식 변기가 얼어 매번 헤어드라이기와 끓는 물을 부어 녹여주어야 했다. 힘겹게 버티던 2층 화장실 수도관과 1층 싱크대 하수관은 급기야 결빙되어 버렸다. 20㎞ 떨어진 철물점에서 급히 사온 스팀해빙기를 동원해 하루 종일 작업한 끝에 간신히 해결했다. 그나마 동파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이번 겨울은 한파에 더해 눈도 자주, 많이 내렸다. 워낙 날씨가 추워 눈을 치워도 금방 얼어붙기에 시골길 다니기는 늘 위험천만하다. 눈 내리던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외출에 나섰던 필자는 운전 중 커브 길을 돌다가 미끄러지면서 보호난간을 들이받는 사고를 겪었다. 다행이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수리비를 지출해야 했다.

2010년 가을 홍천으로 들어온 필자 가족은 동장군에 맞서 벌써 8번 째 겨울을 나고 있다. 전원의 겨울은 매우 혹독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한두 번 겨울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적응이 되고 서서히 즐길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겨울은 겨울답게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원에서는 한겨울에 진정한 쉼과 느림,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더 잘 맛볼 수 있다. 시골에 살면 언제나 자연과의 교감이 가능하지만, 특히 겨울에는 혹독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 그 교감이 더욱 진실해진다. 묵묵히 시련을 이겨내는 수목은 물론이고 민가로 내려오는 고라니, 너구리, 꿩과 참새 등은 항상 만나게 되는 자연의 친구다. 가만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있는 자유함도 누릴 수 있다.

최근 홍천으로 귀촌을 준비 중인 한 지인이 필자를 만나러왔다. 그는 “완전무장을 하고 왔는데도 산골에 들어서니 머리와 목이 차가워지고, 심지어 아픈 느낌마저 들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난해 집을 지어 이사한 한 초보 귀농인은 “이전에는 귀농ㆍ귀촌 선배들이 남향집을 강조해도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는데, 막상 첫 겨울을 지내보니 왜 그랬는지 알겠다”고 말했다.

귀농ㆍ귀촌은 전원에서의 생활이다. 만약 새로운 인생2막을 위해 시골 터를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칼바람 부는 혹한의 1월에 직접 가서 보아야 한다. 이미 시골에 들어왔다면, 한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동장군과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동장군을 피해 도망가는 겨울 난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동장군도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겨울에 동장군과 춤출 수 있다면 그는 진정 자연인이자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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