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올림픽과 평화, 그리고 협상가

싸우지 말자. 죽이지 말자. 그냥 겨루자.

근대 올림픽이 지향했던 바는 분명했다. 적을 죽이기 위해 던지던 창을, 스포츠에선 멀리 보내는 게 목적이다. 더 빠르게 달려 적을 더 많이 살육하는 자에게 지급됐던 훈장은 메달로 바뀌었다. 스포츠의 목적은 넘치는 육체의 정열을 발산할 다른 경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규칙을 정하면 상대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역사의 교훈은 적과 사냥감을 향해 쏘던 총을 ‘흙원반(클레이사격)’을 맞추는 것으로 바뀌게 했다.

종목 불문 한국에서 유독 뜨거운 스포츠 경기는 한일전이고, 포클랜드 전쟁 직후 열렸던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축구는 전쟁을 방불케 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경기에선 관중들 사이 가끔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스포츠가 없었다면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전쟁이, 그리고 살육이 있었을 지 모른다. 스포츠는 ‘적의(敵意)’를 누그러 뜨린다. 그래서 스포츠 제전 올림픽은 ‘평화’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지난 9일 개막된 평창동계올림픽도 역사 속에 평화라는 단어와 함께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반도는 곧 전쟁이 날 것 처럼 위태로웠다. 북한은 잇따라 핵실험과 미사일을 쏘아댔고,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처절한 응징’을 공언했다. 전쟁 공포는 남한 내 일반인들에게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은 ‘생존 배낭’을 구매했고, 특정 날짜에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 것이란 ‘찌라시’도 빠르게 흘러다녔다. 찌라시 유포 속도는 사람들의 전쟁 공포의 크기에 비례했다.

분위기 반전은 1월 1일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힌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북한은 ‘잠꼬대 같은 궤변’이라고 대응했다. 이후 북한은 또다시 핵실험을 했고, 미국 전역을 사거리에 넣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계속 쏘아댔다. 그래서 김 위원장의 평창 참가 발표는 더 파격이었다. 의미를 더한 것은 김 위원장의 친동생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방남이었고, 김여정이 문 대통령에게 ‘방북 제안’을 한 것은 평창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전 세계가 한반도 전쟁을 걱정하는 것은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휴전선 남쪽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이 있고, 북쪽에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배치돼 있다. 한반도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이 될 수도 있다. 났다 하면 ‘패싸움’이다. 지구를 몇번을 날려버릴 수 있는 핵폭탄을 가진 미국과 무모한 도발을 계속해온 북한의 ‘막말대잔치’는 남한 뿐 아니라 세계를 긴장 시켰었다. 평창올림픽 개막 5일째를 맞은 13일 현재, 한반도 전쟁 우려는 극히 잦아들었다.

물론 현재의 평화 상태가 북한의 핵포기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쉽게 예단키도 어렵다. 그럼에도 기대한다. 지난해 5월 타임지는 문 대통령을 표지모델로 쓴 뒤 제목에 ‘협상가(negotiator)’라고 썼다. 다소 의외였던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였지만, 현재 상황을 비춰보면 대단한 통찰이다. 협상가로서 문 대통령의 특장점은 차분함과 섬세함, 결단력, 공감력 등이다.

남한을 둘러싼 북미일중러를 상대할 ‘협상가 문재인’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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