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원의 ‘무섭고도 기막힌 밤’…그 기억속으로

평창군, 봉평에 ‘효석달빛언덕’ 조성
소설 속 배경·명장면 생생하게 재현
올림픽 맞춰 25일까지 무료 임시개관
‘19금’ 물레방앗간은? 글쎄???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모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모밀밭께로 흘러간다.’

허생원이 물레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만리장성을 쌓지만 그녀는 잠적했고 이렇다할 여자 경험이 없다가 젊은 장돌뱅이 동이를 만나 그때 그 인연의 소생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확인한다는 ‘메밀꽃 필 무렵’의 스토리는 ‘재미있네’ 정도의 감흥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묘사된 달빛 아래 모밀밭, 당나귀, 평창의 전원, 봉평오일장 풍경, 서민들의 인정이 아름답다. ‘딸랑딸랑’은 동이가 허생원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암시를 준다.


평창이 고향인 이효석(1907~1942년)의 자연주의 문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주는 따스함을 느끼게 하다가 어느 순간 사람 마음을 확 잡아챈다. 편안한 표현인데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있는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베드신을 표현한 ‘무섭고도 기막힌 밤’은 짧지만 몇 챕터 벌려 쓴 것 이상의 아련함을 준다.

미완으로 끝난 허생원의 사랑과 그 진한 여운을 우리 국민이 참여해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이효석 작품 속 명장면을 평창군이 8000평 부지에 재현해 놓은 것이다.

평창군이 2015년부터 봉평면 창동리 일원 2만6418㎡에 조성한 ‘효석달빛언덕’은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소설속 배경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4월 정식 오픈에 앞서 올림픽 기간에 맞춰 오는 25일까지 무료 임시 개관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소설속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근대문학체험관’은 1920년~1930년대 이효석이 활동했던 시대의 풍경과 문학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다양한 체험 기회를 준다. ‘꿈꾸는 달’에 들어서면 이효석의 기억과 추억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나귀광장’, ‘달빛 나귀 전망대’, ‘꿈꾸는 정원’ 등도 조성돼 있으며, 창밖의 달 모형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인의 달’, 달 카페의 옥상을 잇는 ‘하늘다리’, 야외 휴식공간인 ‘달빛광장’ 등이 트릭아트와 접목돼 소설 속 분위기를 자아낸다.

‘19금’인 물레방앗간은 생생하게 재현해 놓지 않았다. 그것이 효석 문학의 은근함과 부합한다. 강원도립극단의 ‘메밀꽃 필 무렵’ 연극은 현재 ‘문화올림픽’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오는 27일 오후 7시에는 태백문화예술회관, 3월1일 오후4시와 7시에는 원주치악예술관, 3월6일 오후7시에는 삼척문화예술회관, 3월9일 오후 7시30분에는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연극 공연이 이어진다.

인근 이효석 문학관과 무이 예술관도 올림픽 기간 중 무료 운영된다. 마을에는 메밀 음식 잘 하는 전문요리점이 많아 평창 여행자의 허기를 채워줄 것이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