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야, 내도 컬링한데이~”…그 의성을 아시나요?

한 학년 5분의 1이 컬링선수
지금은 마늘보다 컬링이 보물

“어! 의성 알지. 의성마늘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기자가 주변사람들에게 출신지를 이야기하면 되돌아오는 대답의 8할은 이랬다. 심지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품 육쪽마늘도 아닌, 국내 한 식품업체가 생산해 판매한 햄이 마치 의성의 특산품인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의성과 육쪽마늘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동에서 한 시간 가량 남쪽으로 가면 있다는 설명을 기자가 하고나면, 꼭 한 마디씩 덧붙인다. “이야~ 진짜 시골에서 올라와서 출세했네.”

그러던 의성이, 그동안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컬링 수도’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최근 핫하게 떠오르고 있다.

20일 오후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여고 체육관에서 의성여고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의성군민들이 모여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 컬링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합동응원전을 하고 있다. ▶관련기사 5·6면 이상섭 기자/babtong@

▶한 학년 5분의 1이 컬링선수=의성에선 한 다리만 건너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여자 컬링 선수와 연결이 된다. 지금도 의성에 살고 있는 기자의 사촌동생도 김경애, 김선영 선수의 의성여고 시절 동창이다.

“오빠야. 2010년 경북도지사배 대회가 의성에서 열렸는데, 나도 선수로 나갔었다. 그 때 전문 선수팀으로 나온 경애, 선영이랑은 상대팀으로 만났었고.”

사촌동생은 의성여고 2학년 재학 중에 방과 후 수업으로 컬링을 배웠다고 한다. 다들 청소할 때 대걸레질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게 사촌동생의 설명이다.

“얼음판 자체가 거칠거칠한데다 조금만 잘못 보내면 잘 안가. 생각보다 섬세하고 어려워. 머리도 써야하고.”

이어 사촌동생이 들려준 이야기는 왜 의성이 컬링 메카로 불리는지 충분히 이해시켜줄만한 내용이다.

당시 경북도지사배 대회에 여섯팀이 참가했는데, 그 중 네 팀이 의성여고 AㆍBㆍCㆍD팀이었다. 4명이 한 팀을 구성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총 16명이 컬링 선수라는 계산이 나온다. 수가 적다고? 의성여고 한 학년은 100명도 되지 않는다. 한 학년의 5분의1이 컬링선수로 대회에 참가하는 곳이 바로 의성인 셈이다.

▶할머니ㆍ할아버지도 컬링은 안다=의성은 어딜가나 컬링으로 들썩인다. 여태 동계스포츠라고는 1도 관심이 없었던 80대 중반의 할머니도 컬잉 중계방송을 보면서 “얘야. 저기 다른 돌 튕겨내는 저 운동이 정말 재미나더라. 나는 다른 경기를 봐도 무엇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데, 컬링인가 저것은 정말 나한테 딱이더라.”고 말할 정도다. 자칫 리모콘을 잘 못 눌러 다른 채널로 돌리면 할머니는 대번에 “돌 튕겨내는 경기가 왜 TV에서 안나오니? 얼른 채널 다시 돌려봐라”라고 하신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여자 예선 세션 10 경기가 펼쳐진 20일 오후. 의성은 또 다시 뜨겁게 달아 올랐다.

김경애, 김영미 자매의 고향 마을인 의성읍 철파리 마을회관은 한바탕 잔치가 열렸다. 문 밖에 걸린 솥 안에선 수육이 익어가고, 다 같이 모여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컬링 얘기에 푹빠지셨다.

동네주민 조모(70ㆍ여) 할머니는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컬링 시간이면 항상 TV 앞에 앉아서 (경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 선수들이 여기 철파 출신인데 안 볼 수 없지.”라고 말했다.

▶보물이 된 애물단지=처음부터 의성 주민들이 컬링을 사랑했던건 아니다. 2006년 국내 최초로 국제규격의 컬링센터가 의성에 건립됐을 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주민들도 많았었다.

의성군민 손원철(64) 씨는 “5만명이 조금 넘는 군에 국제 규격의 컬링경기장을 짓는다고 했을 때 다들 예산을 쓸데없는 데 쏟는다고 욕 많이 했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성군민 이경섭(56) 씨도 “딸이 의성여고를 다니면서 컬링도 하고 했지만, 사실 유지비 생각하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 많이 했지”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의성사람들에게 컬링은 마늘보다 더 유명한 보물이 됐다. 컬링센터도 ‘애물단지’가 아니라 어디가서도 자랑할 수 있는 ‘보물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성=신동윤 기자·김보희 PD /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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