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경총 부회장 ‘강제퇴거 논란’을 보며

40여년 전 일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직원 한명이 입사했다. 얼마되지 않아 유학을 떠났다. 선진노동시장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귀국 후 이직하려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옮기려했고, 입사가 확정돼 출근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 경총 회장이 한국경제연구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 직원 우리한테 필요한 사람이니까, 데려가려면 우리랑 좀 싸워야 해요.” 회사를 옮기려던 직원의 꿈은 무산됐다. 그 직원은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이다.

“평생 노사(관계)하라는 팔자였나 봅니다. 그 이후 어디 갈 생각을 못했어요.” 언젠가 김 부회장으로부터 옛날 얘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담담하게 말했었다.

경총 차기 회장을 둘러싼 선임 논란이 도마위에 올랐다. 그 중심에는 김 부회장이 위치해 있다. 경총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 여권의 실세 의원이 개입했고, 그 과정에서 김 부회장을 내치기 위한 음모술수가 펼쳐졌다는 것이다. 여권이 경제단체 부회장을 강제퇴거시켰다는 것으로,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실제 지목된 여권 의원도 “일개 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부인했다고 하니, 사실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김 부회장의 그동안의 행보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노동정책에 쓴소리를 던져왔고, 그로 인해 엄청 밉보였다는 말이 파다했다. 김 부회장이 지난해 “세금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임시방편 처방에 불과하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강력 경고한 것도 그런 시각을 더했다. 이에 경총 새회장을 뽑는 시점에 부회장도 교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권에서 퍼졌고, 결국 ‘김영배 강제퇴거’로 이어졌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김 부회장을 옹호하려 쓰는 글은 아니다. 김 부회장은 어찌됐든 자연스럽게 교체될 인물이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경총 부회장을 14년간 했으니 그 역시 머지않은 날 퇴장할 날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전경련의 사례처럼 개인적 영화를 떠나 경제단체 부회장의 장기집권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회원사의 자발적인 뜻이 아닌 외부 입김이 작용해 강제퇴거를 당했다면 다른 얘기다. 정권에 의한 경제단체부회장 교체는 경제단체 길들이기의 또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문재인정부의 청산 대상인 ‘적폐’란 무엇일까. 권력 나눠먹기, 작당, 뒷배 봐주기, 비자금, 불법로비…. 적폐하면 이런 단어가 연상된다. 은밀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 그게 적폐다. 그런 적폐를 청산하려면 과거와의 단절이 전제돼야 한다. 과거에 횡행했던 적폐를 근절하되, 새로운 시대는 그런 적폐 근처에는 아예 가지 않는것, 그래야 적폐 청산의 의미가 있다.

일각의 경총 부회장 강제퇴거 주장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새로운 적폐다. 그런 적폐는 훗날 응징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찾아온다. 다시 적폐청산 구호가 등장하면서 말이다. 이번 경총 사태에 철저한 진상규명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실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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