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과 출장·미팅 NO…미투운동 촉발한 美서도 ‘펜스룰’ 끙끙

직장 내 격리…출장·일대일 면담 취소
美 남성관리자 50% “여성과 직장생활 불편”
WP “남녀 분리, 동물원서 사자·가젤 분리 아냐”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는 일대일로 식사하지 않는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002년 미국 의회전문지 더 힐에 이같이 밝힌 철칙인 ‘펜스룰’(Pence rule)이 성폭력 피해 고발운동인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의 대항 격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투 운동이 촉발한 미국 내에서도 성희롱ㆍ성추행에 엮일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지만, 사회생활에서 여성 자체를 차단하는 행위로 굳어지면서 또 다른 형태의 성차별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NYT)가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최초 보도한 뒤 시작된 미투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사진=게티이미지]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어떤 사람들은 무심코 여성에게 상처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미투 운동이 사회 각계로 확산하고 성폭력 근절이 화두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이 이런 최악의 고정관념을 받아들이고 있다”며 펜스룰에 대해 소개했다.

WP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격리’를 선언한 펜스룰은 미투 운동만큼이나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다른 성별 간 출장을 함께 가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한 남성 로비스트는 공동으로 업무를 진행한 여성 동료를 남겨두고 홀로 출장길에 올라야 했다. 일부 투자자는 여성 기업가와의 일대일 면담을 취소했다. 사내에서 여직원과의 일대일 미팅도 꺼리는 일이 되고 있다.

미국 CNBC방송이 온라인 설문조사업체 서베이몽키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를 인용한 데 따르면 미국 내 남성 관리자의 50%는 여성과의 직장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종종 직장 내 저녁식사, 회사 오찬, 사무 모임에서 제외된다고 CNBC는 부연했다. 펜스룰의 확산은 이런 분위기에 힘을 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드러낸 인물 중 하나다. 샌드버그 COO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임, 티타임 등 우리가 효과적으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상호작용을 포함해 여성 동료와 일대일로 만나는 것을 직장 내 성희롱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여성에겐 (사회생활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펜스룰은 특정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편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모욕에 가까운 것이라고 WP는 지적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성별에 의해 좌우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성별에 대한 분리 규칙을 따로 두는 것은 남성이 여성과 관련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고도 전했다.

WP는 “동물원에 있는 사자와 가젤처럼 남녀를 분리하는 것인 유일한 대책인가”라며 “해답은 분리가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것에 있다”고 했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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