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맛 놓친 설렁탕과 ‘좀비기업’ 구조조정

살다보면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있다. 설렁탕은 사골을 1~2시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후 하루를 푹 끓여야 뼛속에서 뽀얀 국물이 우러나오면서 제맛을 낼 수 있다. 묵은지도 김장 김치를 일정한 온도에서 6개월이나 1년 이상 보관해야 특유의 감칠맛이 생긴다. 하지만 적정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설렁탕을 아무리 맛나게 끓였더라도 2~3번 데워먹으면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올라오고, 먹을 시기가 지난 묵은지는 시고 흐물거리기만 한다. 묵히는 것이 모두 좋지만은 않은 셈이다.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이것저것 고려하느라 먹을 시기를 놓친 설렁탕이 떠오른다. 8년간 구조조정을 진행해 온 성동조선과 STX조선에 대해 이제야 추가 지원을 그만 하기했다. 정부는 예상과 달리 조선업 경기가 개선되지 못한 탓에 양사의 도크(선박 건조시설)가 비어가는데도 이들 기업을 회생시키고자 자금을 지원해 왔다.

특히 성동조선은 지난해 EY한영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청산가치(7000억원)가 존속가치(2000억원)보다 3배나 많다고 나왔지만, 정부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기업 구조조정에 금융 논리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겠다는 새로운 구조조정 원칙을 밝히기까지 했다. 구조조정 주무부처도 금융위원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바뀌었다.

물론 금융논리로 기업을 재단하는 ‘임종룡(전 금융위원장)식 구조조정’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경제ㆍ산업적 고려 없이 업계 1위 업체인 한진해운을 법원의 손에 맡겨 파산시킨 여파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해상운송수지는 47억801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지난 2006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우리나라 해운업계가 혹독한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글로벌 대형 해운사들이 세계 교역 확대에 따른 과실을 독차지했다. 우리 해운업계의 몰락이 글로벌 경쟁사들의 배를 더 불려주기도 했다.

사회적 합의 없이 갑자기 구조조정 ‘룰(Rule)’을 바꾸는 데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 특히 정부의 일자리정책과 지방선거를 앞둔 지방 인심의 중요성 등 구조조정과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기준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하는 등 조선업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바뀐 것은 오해를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 결국 구조조정 골든타임(Golden Time)은 끝났고, 수출입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양사에 지원한 12조원은 되돌려받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을 시작한 게 벌써 8년이다. 하지만 성동조선이든, STX조선이든 정부의 추가 자금지원이 끊기면 생존 가능성이 어둡다는 점은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 전반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꺼진 불이 되살아난 한국GM 사태, 지긋지긋할 정도가 된 금호타이어 매각작업, 괴물이 된 대우조선 처리 등 혈세가 들어간 기업들의 구조조정 숙제는 산적해있다. 지금이라도 구조조정의 틀을 정비하고 지원 및 탈락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더는 국민의 혈세를 좀비기업 연명에 쏟아붓는 실수는 그만 해야한다. 

carrier@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