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AS]김기덕이 승승장구하는 동안…“여성에 대한 성적 테러리즘”

[헤럴드경제 TAPAS=이유정 기자] 2012년 9월 김기덕 감독은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영화 최초로 3대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유일무이한 감독이 됐다. 

그 후 6년이 흘렀다. 지난 6일 MBC PD수첩에서는 김기덕의 영화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그로부터 상습적인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한국 영화, 나아가 세계 영화계에 자리했던 김기덕의 세계가 몰락하는 순간이었다.

PD수첩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제공=mbc]

#김기덕이라는 허상

1996년 11월 김기덕 감독은 영화 ‘악어’로 데뷔했다. ‘섬’(2000), ‘나쁜 남자’(2001), ‘빈 집’(2004) 등을 거쳐 2012년 ‘피에타’로 그의 영화 인생은 정점을 찍었다. 국내에는 김기덕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가진 것 없던 무명의 그를 초창기부터 주목한 일각의 목소리엔 힘이 실린 한편, 그의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페미니즘 논쟁은 다소 맥이 빠졌다.

영화평론가 주유신은 논문을 통해 ‘김기덕의 영화는 여성에 대한 성적 테러리즘’(2004)이라 표현했을 정도지만 대세는 김기덕 감독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자신을 창녀로 만든 가학적 남성을 용서하고 사랑해버리는 김기덕 세계의 여주인공은 인간의 본성, 욕망 따위의 코드로 뭉뚱그려 해석됐다.

영화 ‘피에타’, ‘나쁜남자’ 포스터

김기덕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기에 이른다. 2012년 10월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를 향한 비판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국내외에서 당신(김기덕) 영화야말로 페미니스트 영화 아니냐, 여성이 한국에서 처한 위치를 정확히 지적하는 영화가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도 많다.” 

같은 해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선 “아마 한국 감독 중에 여자를 가장 섬세하게 그리는 감독이 아닐까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예술이라는 핑계

적어도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여성이 처한 위치는 정확히 알았던 것 같다. 증언에 따르면 촬영 현장은 범죄의 현장이었고, 김기덕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배우들이 고통받는 시간 동안 그분들은 승승장구하셨던 것 같아요.” 김기덕과 배우 조재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배우 A씨가 방송을 통해 밝힌 말이다. 20대 초반, 첫 영화 출연에서 겪은 일이었다. 이후 A씨는 몇 년간 죽었다는 소문이 돌만큼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았다고 했다.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그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본인들이 하고 싶은 거 그 사람들도 그만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왜 피해자들만 꿈이 꺾이고 괴로워하고…”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후 아리랑을 부르는 김기덕[사진=mbc 방송 캡쳐]

김기덕 감독은 평소 깡패, 창녀 등 밑바닥 이들의 이른바 ‘거친 행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질곡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거장’ 김기덕이 세계 무대에 서서 아리랑 곡조를 뽑는 모습은 이제 거대한 촌극에 다름 아니다. 그가 세계를 누비며 트로피를 들어 올릴 동안, 현장에선 얼마나 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그들의 꿈을 유린당했을까.

방송이 나간 후, 김기덕 감독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앞서 그는 제작진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 “영화감독이라는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다”며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일방적 감정으로 키스를 한 적은 있지만 동의 없이 그 이상의 행동을 한 적은 없다”라고 성폭행 의혹을 부인했다.

한편 김기덕 감독의 신작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개봉은 무기한 연기될 전망이다.


/kul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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