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파면”국정농단보다 ‘최순실 사익추구에 가담’ 때문

국민주권주의 침해 논리구성 한계

“피청구인(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위는 최서원(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1년 전인 2017년 3월 10일, 당시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장인 이정미 재판관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낭독하기 전 이같이 설명했다. 헌정 사상 대통령이 탄핵심판에 회부된 것은 두 번째지만, 실제 파면 결정이 내려진 첫 사례였다.

9일 헌재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박 전대통령이 파면된 결정적 이유는 ‘국정농단’보다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가담’했다는 점이었다. 최 씨가 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고위 공무원 인사와 각종 이권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정농단’은 이번 사건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불렸다. 

1년 전인 2017년 3월 10일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낭독하고 있는 이정미 헌법재판관. [연합뉴스]

2016년 12월 국회가 헌재에 제출한 탄핵 소추 의결서에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인치주의에 따른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를 위배했다’고 기재한 내용이 담겼다. 투표로 뽑히지 않은 최순실 씨를 국정에 개입시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을 어겼다는 논리다.

헌법 67조1항이 규정한 ‘대의민주주의’를 위반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재 결정문 89쪽에는 헌법 1조 위반이 언급되지 않았다. 한 헌재 고위 관계자는 “처음에는 재판관들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중요한 쟁점이라고 보고 국민주권주의 침해를 검토했지만, 대통령 탄핵 사유로 논리구성이 쉽지 않았다”며 “반면 최순실의 이익추구에 가담했다는 점은 사실관계가 명확해 파면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파면 결정에 재판관들의 이견이 없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의 사익추구에 가담했는지에 관해 재판관들이 장시간 토론했지만, 단 한 명의 재판관도 최순실-박근혜-안종범으로 이어지는 공모구도를 부인할 수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다면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조정수석을 지낸 안종범 씨가 최 씨를 위해 움직일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의 전략 실패에 관한 후일담도 전해진다. 당시 탄핵심판에 관여했던 한 법조계 인사에 따르면 심판 초기 국회 소추위원단은 박 전 대통령 측에서 탄핵심판 절차를 규정한 국회법 규정이 위헌이라고 주장할 것을 우려했다. 국회법상 탄핵심판 의결 절차에는 탄핵 대상이 된 당사자가 국회에 나서 해명할 절차를 의무화하지 않았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찾아보니 국회법에 ‘소명절차’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은 게 위헌이라는 논문도 실제 있더라, 박 전 대통령 측이 국회법 위헌을 먼저 심판해달라고 주장했더라면 탄핵 결정은 상당히 늦춰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헌법재판소도 한동안 여파에 시달렸다. 당초 박 전 대통령이 박한철 헌재 소장의 후임을 결정할 수 있었지만, 탄핵심판 직후 대선정국이 이어지면서 무려 10개월 여 동안 소장 공백 사태를 겪었다. 이정미 재판관과 김이수 재판관이 차례로 소장 권한을 대행했고, 역사에 남을 헌재 결정문에도 재판관 9명이 아닌 8명의 이름만이 기재됐다.

헌재는 2016년 12월 9일 탄핵심판 사건을 접수해 90여 일 동안 3차례 준비기일과 17차례에 걸친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관들은 거의 매일 평의를 열어 사건을 토론했고, 4만8000여 쪽의 기록을 검토했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제출한 탄원서 등 관련 자료들도 40박스 분량에 달했다.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