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양극화] 중기는 잡무·야근에 ‘그림의 떡’

“자기 일 다 마친 사람들은 어서들 퇴근해”

직장 상사로부터 이 말을 자주 듣는다는 중소 디자인업체 재직자 이수현(32)씨는 “그때마다 황당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 씨는 “맡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당연히 하는 일이고, 새로운 사업용 프렌젠테이션도 준비해야 한다. 다른 잡무도 있다. 업무 분담이 안 되는 중소기업에서는 한두 명이 여러 분야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데 ‘일 다 마친 사람은 퇴근하라’는 말은 결국 ‘퇴근하지 말라’는 소리”라고 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열풍이 거세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남의 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재직자는 재직자대로, 경영자는 경영자대로 고충을 토로했다.

중소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는 김지혜(28·여)씨는 “사람 적은 회사에서 큰 회사처럼 결과를 내려고 하니, 있는 사람들만 쥐어짜는 구조다. 야근과 주말 출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데, 격무가 이어지면서 또래보다 빨리 방전되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고 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워라밸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기업 2차 벤더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태완(58·가명) 대표는 “큰 방향에서 워라밸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직원들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더 뽑아서 빈자리를 채우고도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그런데 일단 공고를 내도 오겠다는 내국인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해야 한다. 그나마도 채용한도 쿼터에 걸려 더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워라밸을 추구하는 흐름은 당분간 거스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에 중소기업이 유독 취약하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 후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연간 12조1000억원이다. 

김진원 기자/j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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