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스토리] “먹는 즐거움 누릴 권리ㆍ잘 죽을 권리…모두에게 있죠”

-이강민 ㈜사랑과선행 대표의 독특한 삶
-봉사가 요양사업, 고령배려식 사업으로 확장
-시니어 도시락 배달서비스 ‘맛상쿡123’ 론칭
-고령사회 유기적 문제 해결 돕는 기업 목표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믿음 사랑 소망 중 제일은 사랑이니라’를 되내며 자랐다. 박애와 복음을 품고 자란 크리스천 이강민(41) 사랑과선행 대표는 지난 2006년 ‘더행복’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독거노인을 찾아가 말벗이 되고 식사를 챙기고 목욕을 도왔다. 작은 도움에 기쁨을 느끼는 어르신들을 보며 노년의 행복에 대해 반추했다. 몸이 불편해도, 기력이 쇠했어도 감정은 같았다. 먹고 마시는 기쁨, 마음을 나누며 사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은 젊은이와 다를 바 없었다.

활동은 2008년 몽골 호스피스 봉사로 이어졌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 곁을 지켰다. 삶과 죽음이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무력했다. 눈 앞에서 소멸해가는 영혼을 보며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도록 곁에 있어줄 뿐이었다.

‘생의 마지막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수년간의 봉사를 거치며 더욱 강해졌다. 젊음이 무기인 서른즈음, 이 대표는 결심했다. 노인을 위한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그는 이를 ‘사명’이라고 한다. 2008년 12월 이 대표는 장기요양사업 재가서비스 사랑돌봄재가요양센터를 열고 요양사업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장기요양사업 요양원인 사랑돌봄요양원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강민 사랑과선행 대표. 그는 고령배려식으로 구성된 시니어 도시락배달 서비스 ‘맛상쿡123’ 론칭하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양질의 식사가 노인을 살린다= 사랑돌봄 요양원을 운영할 때였다. 중년의 며느리가 80대 시어머니를 입소시켰다. 당시 어르신의 노인등급은 1등급(누워만 있는 상태)이었다. 특이점은 며느리가 누운 시어머니에게 요구르트만 준다는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밥도 못드시고 요구르트만 좋아하신다’는 이유였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은 죽음이 가까워보였다. 이 대표는 어르신 입소 후 살뜰히 챙겼다. 씹기 편하고 영양이 고루 갖춰진 식단을 3개월 간 삼시세끼 떠먹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꼼짝없이 누워만 있던 어르신이 걸어다니실 정도로 기력을 회복한 것이다. 시어머니의 모습을 본 며느리는 이 대표 앞에서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욕창으로 꼬리뼈가 썩어가던 90대 어르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밥만 잘 챙겼더니 시커멓게 죽어가던 꼬리뼈에 새살이 돋았다. 그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드레싱을 아무리 잘 해도, 간병과 처치를 아무리 신경써도 낫지 않던 환자였다.

“그때 깨달았어요. 아,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삼시세끼 잘만 드셔도 어르신들이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먹고 마시는 것이 육신이 된다’는 새삼스러운 이치가 사무쳤다.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무지와 방임 속에 죽어가는 노인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양질의 식사란 확신이 들었다. 눈을 돌린 건 고령 배려식 선진국 일본이었다.

“일본에는 노인의 삼킴장애에 따라 1~4단계까지 맞춤형 음식이 판매되고 있었고 질병이 있는 노인을 위한 병태질환식도 훌륭했어요. 씹고 마시는 본능을 죽기 전까지 최대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나라였죠.”

이 대표는 우리보다 10여년 앞선 일본의 고령식 서비스를 벤치마킹해 2011년 고령배려식 식자재업체 사랑과선행을 론칭했다.

그러나 쉽진 않았다. 요양원 경험은 있었지만 고령식에 대한 지식은 일천했다. 2년을 연구하다가 2013년, 일본 제1의 고령자 도시락 배달업체인 시니어 라이프 크리에이트(SLCㆍSENIOR LIFE CREATE Inc.) 택배쿡123의 다카하시 히로시 대표에게 무작정 편지를 썼다.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운명= “다카하시 선생님, 직접 만나뵙고 싶습니다.” 전문 번역사에게 50만원을 쥐어주고 편지를 옮겼다.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 봉사활동과 요양원을 운영하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절절하게 적어 내려갔다.

바다를 건넌 편지는 전화로 응답이 왔다. “李さん, あなたを会いたいです(이강민 씨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그길로 일본에 갔다. 다카하시 선생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자꾸만 라이선스를 달라고 했지만 전부 거절했다’고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사명 아닌 사업으로만 시작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효율과 성과를 최고로 여기는 대기업에게 다카하시 선생의 ‘사명’은 비효율 그 자체다. 아수라장이 된 가고시마 지진 현장에 도시락 2개를 배달하러 120㎞를 달려가거나, 노인의 실제 씹힘 정도를 알기 위해 성한 치아를 뽑는 식이니 말이다.(실제 다카하시 선생은 왼쪽 위아래 어금니가 없다)

“다카하시 선생의 살신성인 희생정신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말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심지어 그들은 복음을 아는 기독교인도 아니었죠. ‘왜 제 안에 저런 사랑이 없나요?’라고 괴로움과 눈물로 기도했어요. 그때 또다시 깨달았습니다. 노인을 위한 사업은 사랑과 사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본에서 이 대표를 만난 다카하시 대표는 이후 이 대표가 운영하는 요양원을 찾았다. 직접 환자들을 돌보는 이 대표를 보며 다카하시 선생에게 ‘당신이면 내 사업을 전해도 되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3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고령배려식 기술을 이전받았다. 오랜 준비와 지난해 시범사업 끝에 이 대표는 지난 2월 시니어 식사 배달 서비스-‘맛상쿡123’을 공식 론칭했다. 현재 사랑과선행은 요양원 전문 위탁 경영지원 서비스, 고령배려식 도시락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사랑과 선행 시니어도시락 배달서비스 전문업체<br />이강민 대표.<br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80307
사랑과 선행 시니어도시락 배달서비스 전문업체
이강민 대표.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80307

▶어르신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 그리고 웰다잉= 대한민국은 세계서 가장 빨리 늙고 있는 나라다. 통상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사회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한국의 고령화율은 2011년 11.2%에서 2015년 13.1%가 됐다. 통계청 인구추계에 따르면 이미 올해 고령화 비중이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세계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다. 그만큼 고령자 삶의 질을 개선하고 고령자층의 수요에 대응한 제품, 서비스 개발 요구도 커지고 있다.

사랑과선행의 주요 사업은 요양원 전문위탁 경영지원 서비스와 고령식 공급사업 등 크게 2개 부문이다. 사랑과선행은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와 공동연구를 진행해 삼킴장애 문제 해결을 위한 결과로 취득한 식품 특허 3종을 획득했고 실버푸드 업계 국내 최초로 벤처기업 인증과 함께 국제표준기구(ISO)에서 식품위생표준을 취득한 상태다.

“100세 시대에도 노화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노화가 진행되면 괄약근 기능이 약해집니다.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넘어가서 흡입성 폐렴으로 진행되는 일이 많아요. 증세가 심해져 식사를 할 수 없게 되면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코에 튜브를 넣어서 음식물을 주입합니다. 더 심각한 상황에는 위관을 삽입해 직접 영양을 주입합니다. 인간에게 유일하게 남은 ‘먹는 즐거움’ 조차 빼앗는거죠. 생전에 좀 더 인간적으로 먹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어요.”

고령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국내 시장서 사랑과선행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영업장은 위탁급식ㆍ준위탁ㆍ식자재 유통 등을 포함해 총 200개소까지 늘었다. 매출액도 2013년 2000만원에서 지난해 40억원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사랑과선행은 씹기 좋고 넘기기(저작 연하) 쉬우며 식감을 살리는 음식을 요양시설과 사회복지시설에 공급하면서 ‘맛상쿡123’이라는 브랜드로 도시락 배달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2020년까지 총 가맹점수 목표 500호점을 달성해 전국 서비스를 목표로 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식품 제조 유통 업체인 아워홈과 고령친화식품 개발과 발전 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상호동반 사업모델을 구축하는 데 협의했다.

이 대표의 또다른 빅피처는 단순한 고령배려식이 아니다. 고령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의 유기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그의 최종 목표다.

그는 요양원의 공기질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환기설비시장 1위 업체인 하츠와 요양원 전문 공기질 개선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 다수의 요양원에 공급하고 있으며 몽골 지방정부에도 공기질 개선 솔루션 계약을 추가로 맺었다.

사랑과선행은 어르신들의 안부까지 확인할 수 있는 ‘e집사’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O2O(Online to Offline)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고령자 전문 배려식 배달을 통한 대면 토털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대표는 “사랑과선행은 노인의 돌봄문제, 고독사 등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유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공유가치창출(CSV) 기업이 되겠다”며 “나아가 인간답게 잘 죽을 수 있는 권리, ‘웰다잉(Well-Dying)’을 도울 수 있도록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의 자리 옆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매출 000억원 목표’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사명(使命)’ 이라는 단어가 유독 크게 적혀 있었다. 그가 인터뷰 중 가장 많이 쓴 말이었다.

summer@heraldcorp.com

▶이강민(41) 사랑과선행 프로필

▷1978년 서울 마포 출생

▷양재고 졸업, 안양대 영상학ㆍ사회복지학ㆍ경영학 학사

▷2008년 12월 장기요양사업 재가서비스 사랑돌봄재가요양센터 대표(현)

▷2010년 장기요양사업 요양원 사랑돌봄요양원 대표(전)

▷2011년 노인요양원식품 사업 사랑과선행 대표이사(현)

▷몽골 그린홈호스피스 NGO 이사(현)

▷성남시노인복지시설협회 부회장(전)

▷한국공동생활가정협회 성남지회 회장(전)

▷‘the더행복’ 독거노인 무료 반찬 배달 봉사단체 회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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