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AS]‘나 역시 괴로웠다’…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미투 방관자’

[헤럴드경제 TAPAS 김상수ㆍ신동윤 기자]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미투’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지인이거나 피해자의 지인이거나 혹은 그 공간에 함께 했던 그들.

방관자이지만 방관의 이유도 수위도 모두 달랐다. TAPAS는 그 사람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실명을 원치 않았다. 후회된다는 이도, 후회 없다는 이도 한결같이 마음속엔 ‘짐’이 있는 탓이다.

미안했다. 어쩔 수 없었다. 잊고 싶다. 혼란스럽다…. 그들의 이야기? 아니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다. 


#혼란스럽다.

영화계에서 일하는 A씨는 요즘 마음이 참 ‘혼란’스럽다. 조근현 감독과 친분이 있는 A씨는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먼저 든다고 했다.

A씨는 “(조 감독은) 평소에도 남성, 여성에게 모두 인기가 좋았었다”며 “그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당신이 가해자의 지인이라면, 당신은 그를 위로해주겠느냐, 비난하겠느냐. 과연, 명확한 답은 있는 것이냐.

“주변에서 계속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죠. ‘나도 충격이야’라는 말 외에, 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지금 사람들이 묻는 사람이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사람인가 싶기도 해요.” 

용기있는 고백 ‘#MeToo’…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YWCA회관 앞에서 한국YWCA연합회원들이 ‘3ㆍ8 여성의 날 기념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YWCA 행진’에 앞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쩔 수 없다.

직장인 B씨는 사내 계약직원을 향한 팀장의 성추행을 직접 목격했다. 피해자의 하소연도 들었다. 미투 운동이 사회를 휩쓰는 지금, B씨는 “그 직원을 도와주기엔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계약직 직원의 편을 들어도 결국 해당 가해자는 가벼운 징계로 그치고, 계약직원은 계약연장에 실패하는 결론밖에 나지 않을 거에요. 여기에 스스로 회사 내에서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피해자를 도와줘요.” 사람들은 그런 현실에 갇혀선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B씨에게 이상과 현실은 분명 다르다.

게다가 팀장은 B씨 개인적으로도, 또 주변에서도 존경받는 상사였다. 솔직한 마음을 내비치는 B씨 역시 편치만은 않다. 잠시 침묵하더니, B씨는 재차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 

인권, 용기, 그리고 눈물…지난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미투(#Me Too)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기자회견에서 연극인 성폭력 피해자들이 발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잊고 싶다.

C씨는 서울예대를 나왔다. 지금은 출판계에서 일하고 있다. C씨는 “요즘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이 ‘넌 알고 있었어?’라고 물어봐요. 그런데 전 ‘너도 당했어?’라고 들리네요.”

그럴 때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사실 나도 겪었다고 해야 할까.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C씨는 “출판업계에선 전혀 새롭지 않은 얘기”라고 했다. 어디까지가 피해자이고 어디까지가 방관자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술자리에서 손을 잡히고 야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것, 저는 물론 대부분이 겪은 일이었죠. 더 심한 일도 비일비재했고요. 분명 불쾌했지만 모두들 겪는 일이니 서로서로 묘한 공감대 속에 넘어간 것도 사실이죠. 난 피해자이면서 방관자인 셈이네요.”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ㆍ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후회된다.

“예전엔 학교 선생님들이 전체 회식을 하면 젊은 여선생님을 교장 옆 자리에 앉혀 술시중시키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50대 현직교사 D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직접 술시중을 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당시 상황에선 ‘술시중 선생님이 안됐다’는 생각까지였죠. 분위기를 망쳤다는 비난과 향후 이어질 각종 불이익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최근 미투 운동을 보며 D씨는 당시의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 당시 후배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데에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래요. 결국 전 방관자였죠. 제 일이 아니란 이유에서요.”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D씨는 지금도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피해자가 아님에도, 피해자만큼이나 또렷한 기억이다. 내가 아니란 안도감, 그리고 그 안도감을 느낀 자신에 대한 죄책감. 시간이 흘러도 그 무게는 여전했다. 


#나는?

전국 167개 성폭력상담소에서 한해 동안 이뤄진 성폭력 상담 건수는 10만1028건. 상담을 의뢰한 피해자만 10만명인 셈이다. 한국 인구 약 500명 중 1명꼴이다. 다시 말해, 이미 우리 모두 ‘미투’ 영역 안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고민한다.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혼란스러워할 수도, 외면할 수도, 후회할 수도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미투의 서막을 열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주변인, 우리의 몫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주변에서 방관하고 외면하는 사이, 피해자는 더 고립되고 용인받은 가해자는 범죄를 반복한다.

한국정신보건연구회는 “미투 운동의 용기에 그저 환호하기보다는 약자가 용기 내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이게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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