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학생결사 태극단 결성’ 애국지사 서상교, 숙환으로 별세…향년 95세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항일학생결사 ‘태극단’을 조직해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 서상교씨가 지난 13일 오후 4시59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1923년생인 서상교 애국지사는 일제시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 운동에 투신한 공적이 인정돼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대구 출신인 서 지사는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이던 1942년 5월 같은 학교 학생 이상호, 김상길 등과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항일학생결사 태극단을 조직했다.

애국지사 서상교 [사진=광복회]

 
태극단이란 구한말이래 사용된 태극기를 상징으로 정한 것이며, 태극단 약칭은 t.k.d를 사용했다.

당시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해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기로,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더욱 가혹해지던 때다. 그러나 서 지사와 동지들은 일본군 입대 반대 등 일제에 항거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며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조직 확대를 위해 동지포섭에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43년 4월에는 김정진, 이준윤, 이원현, 윤삼용 등을 동지로 포섭했고 계속 학교 단위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1943년 5월에는 태극단 전원이 대구 비파산 약수터에 모여 결단식을 갖고 구체적 투쟁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한편, 조직을 정비해 나갔다.

태극단은 일반조직과 특수조직으로 나뉘었고, 최고의결기관으로는 간부회의가 운영됐다.

일반조직은 육성부 아래 관방국, 체육국, 과학국 등 3국을 뒀으며 그 밑에 다시 군사부, 항공부 등 10여부를 두어 체계화했다.

특수조직은 건아대로 불렀으며, 중학교 1, 2학년생과 국민학교 상급반 학생을 대원으로 가입시켜 조직한 집단이었다. 이들은 장차 태극단 단원으로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서 지사는 체육국장을 맡아 단원의 연성활동을 지도 감독했다.

태극단 투쟁방략은 조직 확대를 통해 전국의 학교와 각 지역별로 조직을 완성한 후 여론을 환기시키며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서는 것이었다고 한다. 만약 국내 투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중국으로 집단망명해 항쟁을 이어간다는 계획도 세웠다.

단원들은 용두산, 비파산 등의 비밀장소에서 회합을 갖고 학술연구토론회, 체육회 등을 개최하며 동지간 유대의식과 민족적 교양 함양, 체력 증강에 힘을 쏟았다.

궁극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해 각종 군사관계서적 번역, 글라이더 제작 및 폭발물 제조 등을 연구했다.

1943년 5월 내부자가 밀고해 태극단 조직과 활동이 일제에 발각됐고, 서 지사 등 동지들은 수업 중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44년 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5년, 장기 7년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15일 광복으로 출옥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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