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미투①]시험대 오른 ‘미투’ 47일…“사회 변화는 개인 양심에서 출발한다”

-‘권위’ 있는 피해자로 폭발적 확산…운동 위축 우려도
-가부장 세대 vs 성 평등 세대, 가치관 대결 승자는?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미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폭발한 계기는 미국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항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유명 배우들의 고백이었다. 권위있는 유명인이 나서 피해 사실을 고발하자 평범한 여성들 역시 용기를 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 1월 29일 불씨를 당긴 성폭력 피해 폭로는 미투 운동이 47일간 한국사회 전 분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배우 조민기의 사망으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미투 운동의 성패는 결국 개인 양심을 바탕으로 새 가치관을 제대로 수용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3·8 여성의날 110주년인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제1회 페미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미투(METOO)&위드유(WITHYOU)’운동을 지지하는 흰색 장미를 들고서 참가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미투, 어떻게 확산됐나= 미투운동은 서 검사가 피해자로서의 ‘권위’를 획득하면서 폭발적 확산의 계기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서 검사 이전엔 언론으로부터 이 정도 권위를 획득한 피해자가 없었다. 생방송 뉴스 스튜디오에 나와 단독 발언할 기회를 얻은 건 서 검사가 처음”이라며 “시대가 바뀐 것을 감지한 피해자들이 ‘여론은 적이 아닌 응원군’이라고 인식하고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 검사의 폭로 이후 미투 운동을 향한 지지 여론은 들불처럼 번졌다. 검사마저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이 사회에 자유로운 여성은 없을 것이란 절망과 공명정대해야할 검찰조차 성폭력을 묵인하는 조직이라는 분노 여론이 다른 피해자들의 미투 폭로를 지지했다.

이에 힘입은 피해자들이 추가 폭로에 나서면서 미투는 퍼져나갔다. 국내 대중예술계를 강타한 후, 법조계ㆍ종교계ㆍ교육계로 확산하며 한국사회 권력의 정점인 정치계까지 조준하고 있다.

▶새 국면 맞은 미투…피해자를 위한 지지와 연대 절실 =그러나 최근 미투 운동은 국내외로 새 국면을 맞이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된 미국 현지에선 여성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보겠다는 ‘펜스룰’ 움직임이 나타나며 성대결 양상이 확산됐다.

국내에선 배우 조민기 사망으로 도리어 일부 피해자를 비판하는 목소리마저 고개를 들면서 미투 운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확산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지와 연대’를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미투 창시자인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최근 영국 텔레그레프와의 인터뷰에서 “미투 운동은 성폭력을 겪은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버크는 “많은 피해자가 여성이라 여성들이 주요 동력이 됐지만, 케빈 스페이시의 폭력을 고발한 소년들과 수백만 남성 성폭력 피해자 역시 배제할 수 없다”며 남성들의 동참을 독려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그동안 가볍게 다뤄졌던 남성들의 성폭력 피해 역시 진지하게 성찰하자는 제안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15일 여성ㆍ시민ㆍ노동계 시민단체 337곳이 연대해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출범을 선언하기도 했다.

▶가부장제 vs 성 평등, 가치관 대결 승자는=전문가들은 이번 미투 운동을 ‘평등’ 개념을 학습한 젊은 세대가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한 사건으로 풀이했다. 위창희 청소년성문화센터 사무국장은 “4050 세대의 자녀인 젊은 층은 ‘평등’을 듣고 자란 깨인 세대다. 교육의 힘으로 폭력 앞에 피해자가 창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성 인지 수준이 높은 젊은층은 미투운동 수용도가 높았다. 직장인 정주엽(29ㆍ가명) 씨는 “미투 운동 이후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나이가 들고 높은 자리에 갔을 때 저렇게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조기웅(29ㆍ가명) 씨도 “미투운동은 586세대의 낮은 성 인지 수준 때문에 일어난 문제”라며 “미투 때문에 펜스룰을 외치겠다고 말하면서도 남자 부하직원은 더 쉽게 성희롱 하고 ‘너 왜 미투 안 해?’라는 농담까지 한다”고 기성세대를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기성 사회가 젊은층이 제시한 새 가치관을 수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양심에 달린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피해자가 고발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힘 없는 젊은 층이 현상 유지를 원하는 정치권 등과 힘겹게 대항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다음 세대에게 현 상황을 그대로 물려줄 것인지, 아님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는 이제 개인의 양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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