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의 ‘실리콘밸리 사기극’…억만장자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언론 거물’ 루퍼트 머독, 1억달러 손실 ‘쓴맛’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미국 정치인과 거물급 투자자, 기업들이 ‘테라노스 사기극’에 휘말리며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창립자가 “피 몇 방울로 수십 가지 질병을 한 번에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너도나도 투자자 또는 이사진으로 나섰지만, 그 주장이 ‘사기’로 확인되면서 낭패를 보게 된 것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CNN머니에 따르면 홈즈는 2003년 바이오 벤처기업 테라노스를 창업한 후 부채 조달을 포함해 총 9억달러(약 96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이와 관련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전날 홈즈가 허위 기술로 투자자를 속여 자금을 모았다며 ‘대규모 사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AP연합]

홈스는 19살 때 스탠퍼드대를 중퇴, 테라노스를 창업해 몇 방울의 피만으로도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단숨에 실리콘밸리의 ‘미래’로 떠올랐다.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도 한때 90억달러(약 9조6000억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테라노스가 제공하는 200여개의 혈액검사 중 단 12개 항목만 자체 기술로 검사됐다고 보도한 뒤 의혹이 증폭되면서 연구소 폐쇄, 투자자 소송 등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테라노스의 기술을 믿고 베팅했던 투자자들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으며 숨죽인 상태라고 CNN머니는 전했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오라클 설립자 래리 엘리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억만장자다. WSJ는 한때 회사의 최대 투자자였던 머독의 손실은 총 1억달러(약 1069억원)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엘리슨은 벤처 캐피탈리스트를 통해 사업 초기부터 테라노스에 투자했다. 벤처 업계의 ‘큰손’ 팀 드레이퍼도 초기 투자자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홈즈의 혐의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 기업 월그린스와 블루크로스블루쉴드도 투자자 대열에 올랐다. 월그린스는 부정확한 실험결과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책임을 물어 테라노스를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전ㆍ현직 정치인으로 구성된 내로라 하는 이사진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충분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빌 프리스트 전 상원의원, 샘 넌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이 해당 인물들이다. 미 국방부는 매티스 장관의 이사회 합류 배경에 대해 “테라노스의 기술이 약속하는 바에 큰 감명을 받았고, 전장에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술적 솔루션을 찾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테라노스에 속기 쉬웠던 투자자들은 홈즈의 ‘초다수 의결권’에도 동의해줬다”며 “홈즈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을 때에도 회사가 팔고 있던 모든 것을 믿을 용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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