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힘들다면서 왜 여행 다녀?” 피해자 울리는 편견들

-그릇된 편견 속에 사는 성폭력 피해자들
-“피해자 고통만 강조하는 분위기 삼가야”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미투 운동 피해자 A 씨는 최근 여행을 다녀온 후 주위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수근거리는 것을 들었다. 피해자가 왜 여행을 다니냐는 것. 이뿐만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SNS에 맛있는 음식 사진을 올리거나 프로필 사진을 바꿀 때마다 주변에선 “이젠 괜찮은 것이냐”는 등 반응을 보였다. 지인들의 이같은 반응에 A 씨는 “’피해자스러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자신을 검열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는 “피해자는 어떠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다”며 “어서 빨리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사진>3ㆍ8 여성의날 110주년인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제1회 페미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미투(METOO)&위드유(WITHYOU)’운동을 지지하는 흰색 장미를 들고서 참가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미투 운동이 커지면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래야 할 것’이라는 자격론에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씌워진 사회적 편견이 일상으로의 회복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자들은 “피해자들이 모두 평생 고통스러운 상태로 살아가진 않는다”며 고정관념을 버려달라고 당부한다.

수년 전 직장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B 씨는 사건을 잊으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딱하다는 시선을 보낼 때마다 과거에 묶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의 농담에 환하게 웃기라도 하면 ‘이제는 다 잊었느냐’는 질문을 한다”며 “피해자는 무조건 어둡고 울면서 괴로워할 것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고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C 씨는 “피해자 중에는 가슴에 묻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행을 다니고 일도 열심히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며 “특정 이미지를 기대하고 피해자들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고통만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우려를 표한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사회에서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을 정해놓고 ‘피해자스러움’을 요구하는 시선이 있다”며 “성범죄 피해자들의 상처가 영원히 극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들이 빨리 치유하는데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10명의 피해자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제 각각이고 하루하루 사건에 대한 태도도 변한다. 어제는 괜찮지만 오늘은 힘들기도 한다.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을 단순히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혜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연구원은 “피해자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나의 권리라고 봐야 한다. 대부분의 성범죄는 성별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피해이기 때문에 불운한 개인의 일이라고 여길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피해를 보장받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주변사람들은 피해자가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겠지만, 피해자들은 주변에서 ‘늘 힘들 것이고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대하는 것에 절망한다. 과거를 잊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피해자 입장에선 트라우마에 가두는 말이 될 수 있으니 조심히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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