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올림픽과 V리그

평창동계올림픽의 열기와 감동이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특히 컬링 스켈레톤 등 이름조차 생소했던 겨울 스포츠와 친숙해지고 그 재미를 한 껏 누린 게 가장 큰 소득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출전했던 우리 선수들 성적도 좋았으니 그만하면 올림픽 치르느라 들어간 노력과 비용의 절반은 건진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금메달 집착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이 반갑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한결 확연해진 것이다. 메달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을 쏟아내는 그 자체가 감동이고 평가받을 일이란 얘기다. 메달은 단지 그에 따르는 결과물일 뿐이다.

그 사례를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 해도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지 잘 보여줬던 이상화 선수의 은빛 레이스, 1승도 건지지 못했지만 혼신을 다해 투지를 불사른 남녀 아이스하키팀…. 올림픽이 상업화 돼 간다고 야단이지만 최선을 다해 당당하게 승부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 정신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분명 작동하고 있었다.

눈과 얼음판에서 벌이는 경기는 아니지만 프로 배구 역시 겨울 스포츠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프로배구 V리그는 축구와 야구 등 실외 스포츠 동면기(冬眠期) 틈새를 파고들어 출범 12년만에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게 됐다.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며 벌이는 호쾌한 스파이크와 짜릿한 블로킹의 향연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그 대가로 팬들은 기꺼이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

한데 시즌 막판에 접어든 V리그는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플레이 오프 진출이 확정된 팀은 후보선수들로 잔여 경기를 치르고, 주전급 선수들은 컨디션 점검을 하는 정도로 간간히 출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긴장감도, 박진감도 살아날 턱이 없다.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전략 차원이라고 하지만 이유가 되지 않는다. 프로 선수와 감독이라면 단 한 명의 팬이 지켜보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프로이고, 그들의 존재 이유다.

남자부 정규리규 우승을 차지한 현대캐피탈의 마지막 6라운드 경기 결과를 보면 “이러고도 프로인가”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7일 챔피언 시리즈 직행이 확정되자 이후 일정은 사실상 연습경기나 다름없이 치러나갔다. 남은 4경기 모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완패했음은 물론이다. 비싼 비용과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이런 무기력한 경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비록 경기에선 이겼지만 상대팀은 또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을까.

성적에 목을 매야 하는 감독의 마음은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잠시 영화를 가져다 줄지는몰라도 결국은 다 제살 깎아먹기라는 걸 알아야 한다. 맥빠진 경기를 보고 떠난 팬들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팬들이 바라는 것은 우승이 아니라 매 경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다. 이번 올림픽에서 잘 보지 않았는가. 이게 다 성적지상주의가 낳은 사회적 폐해다. 내년 리그는 달라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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