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파장]‘男 성폭력 피해’도 증가했지만…속으로만 ‘끙끙’, 왜?

-2016년 성폭력 남성 피해자 1212명…매년 증가
-기관은 ‘여성 위주’ 한계…“남성위한 기관도 필요”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대학교 모 연구실 소속의 학생 A(23) 씨는 남성 교수로부터 2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가 노래방에서 허벅지와 자신의 성기를 수차례 더듬었다는 A씨는 “학교에 신고를 해도 사과만 하고 사건은 무마됐다”고 말했다. 한 학기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후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는 학교 가기도 싫어져 아버지께 피해 사실을 이야기 했더니 ‘사과도 했으니 교수님 뜻대로 해줘라’는 말이 돌아왔을 뿐이다. A씨는 결국 용기를 내 다시 학교 측에 정식으로 신고를 했다.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 교수에게 함께 피해를 당한 선후배에게 증인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그들이 되레 학교 측에 피해사실이 없었다고 거짓 보고를 해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남성 성폭력 피해자도 큰 후유증을 호소하지만 정작 이들을 위한 보호 및 지원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하 여정원)이 지난해 내놓은 ‘2017 성폭력ㆍ가정폭력 남성 피해자 지원현황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 성폭력을 당한 남성은 지난 2014년 1066명에서 2016년 1212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성폭력 발생 건수의 약 5%에 불과하지만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은 건수를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정원이 해바라기센터, 여성긴급전화 1366 등 성폭력 상담기관에서 근무하는 상담사 1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성 피해자들로부터 도움을 요청 받은 경우는 72.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유형별로는 가정폭력 상담소 종사자가 84.5%로 가장 많았고 여성긴급전화 1366이 84.5%, 해바라기센터가 72.9%, 성폭력 상담소가 61.7%로 그 뒤를 이었다.

남성 피해자 대부분은 무기력, 분노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부터 이성관계 문제 등 다양한 후유증을 호소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많지 않다. 현재 여성긴급전화 1366 중 일부만 남성 피해자 사례를 받고 있고 남성 전용 기관인 ‘한국남성의전화’도 가정폭력 위주로 지원하고 있어 성폭력 남성 피해자를 위한 전문기관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현재 지원 시스템은 성폭력 피해자의 95%인 여성에 맞춰져 있다. 상담을 진행하는 상담사들 역시 대부분 여성이다. 남성 피해자 지원 매뉴얼이 없거나 지원 매뉴얼이 있어도 남성 피해자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상담사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는 곧 피해자를 위한 신속한 지원과 조치를 지연시키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한 상담사는 “성폭력 피해자, 성폭력 상담소라고 하면 여성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연락을 꺼려한다. 남성을 위한 기관이 있다면 이들이 연락하기 더 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성 피해자 사례가 매년 증가하는 만큼 남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력으로 구성된 특화된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성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이들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며 “지원기관의 접근성, 종사자, 경찰 및 의료기관 담당자의 전문성, 남성 쉼터 설치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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