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1980년대 영국을 닮아가는 한국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영국을 닮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자동차업계 전문가와의 만남에서 이같은 질문을 받았다. 무슨 말인가 곰곰히 생각하다 답을 찾았다. 바로 호황기에서 쇠락기로 접어들때의 영국의 자동차산업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1980년대 영국 자동차산업은 쇠퇴기를 맞았다. 그 이전까지 영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의 명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극심한 노조 리스크로 인해 영국 자동차산업의 위상은 한순간에 급추락했다. 이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영국은 극심한 노사 분규 등으로 인해 1980~90년대 잇따라 자국 브랜드를 매각하면서 일부 럭셔리 카를 제외한 영국 완성차 브랜드는 모두 외국 자본에 팔려나갔다. 영국이 보유한 자동차 브랜드는 사라진 것이다.

1987년 애스턴 마틴이, 1994년 재규어ㆍ랜드로버, 1998년 영국의 자랑이었던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주인이 바뀌었다.

영국은 거대한 자동차 왕국에서 거대한 OEM 생산기지로 전락했다. 불과 반세기만의 일이다. 이같은 일은 현재 한국의 자동차산업과도 비슷하다. 노사 갈등에 따른 비용 상승 및 생산성 저하가 흡사하다. 이미 영국과 비슷한 길을 걸은 나라가 있다. 바로 호주다. GM사태로 종종 거론되는 호주는 최근 GM, 도요타, 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들이 철수했다.

호주 자동차산업 붕괴의 원인으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꼽는다.

호주의 피용자보수비가 47.7달러로 세계 최고치를 기록했다. 멕시코 6.4달러의 8배에 달한다. 피용자보수비는 자동차 공장을 운영하는 제조사가 근로자 1명을 고용했을때 1시간에 어느정도 비용이 드는 지 조사한 수치다. 고비용에 주당 정규시간이 38시간에 불과해 하루 7시간 36분만 근무하면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추가 수당이 붙는다. 이처럼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호주에서 철수했다. 91년간 자동차를 생산하던 호주는 100% 자동차 수입국이 된 것이다. 여기에 정부도 한 몫 했다. 자동차업체들이 위기에 빠지자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을 하기보다는 단기 처방인 보조금 지원을 했기때문이다.

영국과 호주의 운명과 달리 위기를 기회로 만든 나라도 있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1990년대 통일 이후의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0년대 초반 정부와 민간 부문이 협력해 노동 유연성 확대를 골자로 하는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기업은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노동자는 임금 인상과 근로시간을 양보했다. 이에 발맞춰 정부도 사회보장시스템을 개선했다. 이같은 노사정 협력으로 생산성 증대는 현재의 제조업 강국 독일로 부상하는 발판이 됐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영국이냐 독일이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자국의 모든 브랜드를 잃고 나서야 협력적 노사관계 모델을 구축한 영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노사가 손을 맞잡고 양보와 협력을 이뤄나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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