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 넷을 더한 강진 고을…몸 보다 마음이 먼저 ‘출렁’ 이네

국내 최장의 ‘사랑 플러스 출렁다리’ 에
동서 이어주는 소통의 ‘가우도 출렁다리’
‘생태공원 나무다리’ ‘말벅지 다리’ 까지

고개 올려보면 익선관을 쓴 임금바위
다산 유배길 백운동 정원은 조경의 백미

‘편안한(康) 나루(津)’ 강진이 네 개의 출렁 다리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남도의 소금강’ 석문산과 다산 정약용의 혼이 흐르는 만덕산을 ‘사랑 (플러스)’ 구름다리로 이었다. 강진만 한가운데 가우도엔 고을의 동서, 대구와 도암을 잇는 ’소통‘의 출렁다리가 놓았다.

강진군의 한복판 탐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갈대숲ㆍ생태공원엔 여행객과 군민의 발걸음을 부드럽게 받아주는 나무다리가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놓여, 해양습지 생태를 코 앞에서 호흡하게 한다.

네번째 다리는 강진 전체이다. 스켈레톤 챔피언 윤성빈 급 말벅지 하체 모양으로 생긴 강진은 북으로 월출산에서 시작해, 동편아래로는 제주의 준마(駿馬)를 한양에 보내기 전 영양을 공급하던 마량(馬良)으로, 서쪽 아래로는 주작산 자연휴양림이 휘톤치트를 내뿜는 신전으로 뻗어, 남도를 지탱한다. 출렁이는 강진의 다리들이 요즘 국민 마음을 흔든다.

남도의 명품 고을 강진에는 숨겨진 여행코스가 따로있다. 요즘 국민의 마음을 흔드는 네 개의 교량이 그것이다. 올 봄 정약용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고려청자를 구워내던 조상들의 향취를 쫓아 강진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사진은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갈대숲 생태공원 습지위 데크다리, 사랑 (플러스) 구름다리, 임금바위.

유홍준 엄지척 강진, 답사기 (플러스)=백두대간 끝자락 지리산에서 이어진 호남정맥의 9산, 2봉, 6재가 동서북 3면에 둘러쳐 있고, 북동에서 탐진강이, 북서에서 강진천이 흘러내린다. 길다란 강진만이 이들을 맞는다. 그래서 강진은 신의 선물 같은 토양과 식생을 자랑한다.

흙이 없어 서양이 못만들고, 흙 품질 떨어져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대한민국 고려청자의 80%를 강진에서 생산하는 것도 천혜의 지질학적 특성 때문이다. 강진만은 좁고 길기에 불가침이다. 남해의 해양생물은 좁고 긴 이곳을 종점으로 여겨, 한번 들어오면 눌러 살며 편안히 수산자원은 재생산한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1992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본문 322쪽을 쓰면서, 강진을 ‘남도 답사 1번지’라고 치켜세운 뒤, 책의 맨 앞 43쪽이나 할애했다. 유홍준이 발견한 건강한 정신, 강건한 토양 위에, 2018년 강진은 석문의 사랑과 가우도의 소통을 더했다.

사랑의 다리와 임금바위의 미소= 도암면 ‘사랑 플러스 출렁다리’는 국내 최장(111m) 산악 현수교이다. 설악산에 7형제봉이 있다면 석문산은 70형제봉쯤 되는 뾰족 석산 무리가 장관을 이룬다. 구름다리 끝에는 사랑(♥) 조형물이 있고 고개를 올려다 보면 세종 혹은 정조대왕 모습의 익선관을 쓴 임금 바위가 흐뭇하게 내려다 본다. 애틋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출렁다리 결혼식도 이어진다고 한다. 인근엔 석문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295㎡의 규모의 피아노, 첼로 모양 풀장이 있다.

이곳은 남도명품길로 지정된 강진 바스락길목이다. 인문 사상, 정치학, 물리학ㆍ농학을 비롯한 과학기술, 법학, 시문, 예술, 소통의 사회학 등 다방면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한국의 다빈치’ 다산 정약용의 혼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바스락길 출발지 백련사 일대에는 1500여 그루의 동백이 3월 하순 절정기를 맞아 나무에 매달리거나, 땅에 내려앉아 나그네 발길을 붙잡는다. 강진 유배 18년 중 10년을 머무르며 500여권을 집필한 다산초당까지 가는 800m 고갯길엔 편백, 삼나무 등이 깨끗한 공기를 내뿜어 가슴이 시원하다. 다산은 양반가는 물론 하급관리 자제까지 18명의 제자들을 유배중 길러냈다.

강진 로맨스=팔방미인 다산은 예능감도 좋았다. 정조대왕과 함께 ‘보리 뿌리 맥근맥근(麥根麥根)’, ‘오동 열매 동실동실(桐實桐實)’하며 조어 배틀도 했고, 晶(정), 磊(뢰), 충(蟲), 삼(森) 등 같은 글자 세 개로 한 글자가 된 사례 대기 경합도 벌였다. 굉(轟)자 등으로 승기를 잡은 정조가 “더 없지?”라고 하자, 다산이 마지막으로 삼(三)자를 들이밀며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는 일화가 있다.

못하는 것 없는데다 신수가 훤 하니 따르는 백성도 많았거니와 그를 흠모하는 여인도 몇 있었다고 한다. 최문희가 고증 소설 ‘정약용의 여인들’을 통해 진솔, 초선 여인이 유난히 다산을 좋아했고, 진솔은 다산을 수발하며 홍림을 낳았다고 쓰자, 강진에선 지금도 진위 논란이 이어진다. 유배에서 해제되면서 진솔-홍림 모녀는 종적을 감추었고, 다산은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다는 것이다.

‘저 새들 날아왔네(翩翩飛鳥). 이제 여기 머물며(爰止爰棲),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樂爾家室). 주렁주렁 열매도 맺겠지(有基實).’ 강진 유배 후기 어느 춘삼월, 다산초당 앞 매화꽃나무에 새 두 마리가 앉은 것을 보고 쓴 이 시화는 다산의 ‘강진로맨스’ 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정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홍연의 혼사를 앞두고 보낸 시라고 알려졌지만 내용상 진솔-홍림에 가까운 것이고 시화 두 개를 그려 홍림에게도 보냈다는 설이 들린다. 봄이라 논해보지만, 평하기는 어렵다.

어쨋든 인간 다산의 빛나는 족적 덕분에 다산기념관 청렴교육과 농박(農泊)체험 ‘필링 업 스트레스 오프, 푸소(FU-SO)’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강진여행 4코스=강진여행은 4구역으로 나뉘지만 강진읍내를 중심으로 모두 차로 10~20분이면 닿을 정도로 모여있다. 서쪽 말벅지 다리에 해당하는 다산권역엔 다산초당, 사랑 다리, 석문 물놀이장, 주작 휴양림, 가우도 출렁다리ㆍ청자탑이, 동쪽 다리에 해당하는 청자권역엔 청자박물관, 민화뮤지엄, 마량 놀토수산시장(마량미항 토요음악회), 초당림 물놀이장이 있다.

북쪽 하멜권역엔 옛 교복 입고 나서는 ‘월출산 소풍가기’ 출발지, 전라병영성, 튤립정원과 하멜 기념관, 백운동 정원, 강진다원, 무위사 국보 2개 극락보전ㆍ토벽화, 월남사지 등이, 중부의 영랑권역엔 금곡사 벚꽃길, 다산이 하급 관리 자제를 교육한 주막집 사의재, ‘돌담에 속삭이는’ 모란꽃의 영랑 생가, 강진 오감통과 문화예술 전통시장, 보은산 V-랜드(연꽃 방죽, 수국길, 편백숲) 휴양 시설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 중 정약용 유배길 4코스에 해당하는 백운동 정원은 눈에 띈다. 다산이 초의선사 등 벗들과 자주찾던 월출산의 제1경이다. 그 옆엔 강진다원 녹차밭이 산 아래 펼쳐져 있다. 백운처사 이담로 선생은 사람이 드나들며 감상하는 정원이라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애썼다. 계곡물의 작은 줄기 하나가 마당에 흘러들었다가 다시 나가게 했고, 초가 주변 조경도 주변 수목과 조화를 이루도록 꾸몄다.

강진의 끼부림 오감통=읍내의 군민 음악창작소 ‘오감통’은 문화예술 공연이 벌어지는 전통시장과 닿아있다. ‘아이돌’급 녹음실 까지 갖췄다. 이곳엔 군민 참여형 방송국 ‘라디오 강진’도 있다. 올 봄 편성은 지역 소리꾼 라이브 공연, ‘우리동네 스타’ 소개, 여행작가의 강진나들이 등으로 짜여진다.

강진 여행을 마칠 무렵 읍내카페를 찾았더니 주인이 “노모께서 만드신 건데 잡솨보시라”며 전통호박빵을 내왔다. 저녁엔 일번지 소주방을 찾았더니 동네 아저씨 김재길(50)씨가 기타를 들고 들어와 주인의 양해를 구한뒤 1980년대 발라드를 불렀다. 손님들의 갈채를 받은 후엔 기타를 빌려주고 다른 손님에게 노래를 권했다. 둘다섯의 ‘밤배’, 배따라기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등 아재들의 노래에 젊은이들도 호응한다. 강진의 이같은 ‘끼’와 우정이 오감통을 탄생시킨 듯 하다.

다산은 좋은 곳이 있으면 감흥에 젖어 백운첩 등 시집을 만들었다. 강진은 다산 식(式) ‘여행첩(帖)’을 만들어도 될 만큼 풍광, 먹방, 정신, 손재주, 스토리, 우정이 넘치는 곳이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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