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과격한’ 태극기 집회, 좀 더 합리적일 순 없을까

평범했던 골목길에 인간장벽이 생긴다. 또 그 벽 앞으론 사람들이 달라붙는다. 한쪽 벽 앞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중장년 수십명이, 다른 벽 앞은 마이크를 든 5ㆍ18 단체 회원들이 모였다. 태극기 든 쪽은 70여명이 5ㆍ18단체 22명을 압박한다.

한적했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일대는 금세 혼란에 빠졌다. 벽을 만들고 선 서대문경찰서 의경들은 양쪽 사람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움직임이 제지당한 태극기ㆍ성조기 시위자들은 경찰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어린 아들의 손을 잡은 외국인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골목길을 통제하던 경찰에게 “집으로 가야만 한다”며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한다. 그뒤로 “왜 저들은 통과시키냐”는 태극기ㆍ성조기 무리의 거센 반발이 이어진다. 그 뒤로 욕설과 거센 몸짓이 난무하자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동했다.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조심조심 길을 지나던 부자는 5ㆍ18 시위대에게 묻는다. 시위대가 서툰 영어로 5ㆍ18 민주화운동을 설명하자,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왜 골목길에서 집회가 진행되는지, 한국 집회에 도대체 왜 성조기가 등장했는지 궁금한듯한 눈치다.

한국 사회에서 집회ㆍ시위는 언제부턴가 소음과 공포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촛불 정국 이후 토요일 오후면 종로판을 가득 메우는 태극기 시위대 때문이다. 시위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회가 있는 토요일이면 종로 일대는 마비가 된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태극기 집회가 진행됐던 지난 삼일절. 광화문에서 만났던 싱가포르인 유학생 카이웨이(26ㆍ여) 씨는 “처음에는 (태극기 단체가) 태극기를 들고 시위를 해서 광복을 기념하는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성조기가 같이 등장해서 무슨 기념일인지 궁금했다다”며 “친구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시위대가 경찰과 기자를 폭행하는가 하면, 일반 시민들과 충돌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시민들은 이런 상황이 ‘이해가 안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19일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3시 5ㆍ18 단체인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사모)’이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집회를 진행한 가운데 태극기 단체인 ‘무궁화 애국단’은 무력 충돌을 각오하고 사저 앞에 나타났다. 애국단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했다. “전 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빨갱이’들의 만행을 막아야 한다”는 구호를 인터넷 방송을 통해 외쳤다. 의도적으로 오사모의 시위를 반대하는 것이 목적이다.

오사모가 ’회고록 판매 중단‘, ‘역사 왜곡에 대한 공식 사과’, ‘발포 명령자 규명’을 요구할 때, 거기 맞선 무궁화 애국단은 “5ㆍ18은 거짓”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방송 취재진이 영상 촬영을 하자 카메라를 뺏어 집어 던지려는 모습도 보였다.

무궁화 애국단의 시비로 양측 시위대 간 충돌도 발생했다. 오사모의 집회에 무궁화 애국단 단원들이 달려들었고, 5ㆍ18 유족과 단체 회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이들은 5ㆍ18 민주화운동은 거짓이고, 희생자들은 간첩이라고 소리쳤다.

오사모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무궁화 애국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날 자리한 최운용 고문은 “그들(무궁화 애국단)이 어떻게 알고서 여기를 찾아왔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들이 전 전 대통령을 왜 비호하면서, 시비를 거는 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사모의 시위는 이날 오후 4시께 종료됐다. 오사모가 전 전 대통령 사저 앞 현장을 빠져나가자 취재진들도 서둘러 퇴장했다. 하지만 무궁화 애국단 회원들은 현장에 계속 남아 태극기를 흔들었다.

최근 태극기 집회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중론이다. 폭력적이고, 보는 이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의견이 많다. 이런 태도는 일반 시민들에게 되레 거부감을 준다. 시위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역효과를 줄 수밖에 없다. 진정 원하는 바가 있다면, 투쟁 방식을 바꿔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zzz@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