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멈춘 아이의 스무살…법은 알아서 하라고 한다

고교까진 학교라도 보냈는데
보낼 곳 없고 더욱 고립된 삶
가족문제 치부 무책임한 사회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필요

#1.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김모(51ㆍ여) 씨의 가장 큰 걱정은 나이가 드는 것이다. 엄마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아이가 혼자 지낼 것을 생각하면 눈물만 흐른다. 방 안에서 아이와 단 둘이 보냈던 시간만 20년.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 것 같아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많다. 그 때마다 해맑게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의 눈을 보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김 씨는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아이보다 하루만 더 오래 살게 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기도를 매일하며 버틴다”고 울먹였다.

#2. 25세 발달장애 딸을 둔 조영실(52ㆍ여) 씨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오늘은 딸과 무엇을 하고 보낼지 막막하다. 조 씨는 아이가 학교를 졸업한 스무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조 씨는 아이와 떨어져본 적이 없다. 다 큰 딸과 하루 종일 붙어있는 게 버거워 기관을 찾아 다녔지만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는 “여러 곳 면접을 봤지만 돌발행동을 감당하기 힘들어서인지 연락오는 곳은 없었다“며 “발달장애인 특수성을 반영한 센터 설립이 시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2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제’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삶’은 사치였다. 아이에게 엄마는 유일한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장애아라는 이유로 지역사회에서 고립된 아이를 홀로 지키느라 엄마들도 함께 고립돼 갔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삶에는 정부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지난 20일 청와대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주최로 열린 ‘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제’ 촉구 기자회견에서 만난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정부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부가 발달장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방치해왔다고 지적했다. 자폐 1급 아이를 둔 한 어머니는 “장애인특수교육법이 있어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라도 다닐 수 있었지만 스무살이 넘으면 갈 곳이 없어진다. 아이와 가족 모두 사회와 점점 고립돼 살아가고 있다”며 “너무 힘들어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고 눈물을 훔쳤다.

실제로 지난 2015년 대구에서 지적장애 언니의 부양이 버거웠던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광주에서는 5살 된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가족 세 명이 함께 세상을 떠났다. 서울 관악구에서는 17세 된 자폐성 장애인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아버지가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 힘든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이 같은 비극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외면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회적 타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의 매니페스토 협약을 통해 약속했던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서비스 제도화 및 활동지원서비스 제공시간 확대 ▷발달재활서비스 이용 대상 및 지원금액 확대 ▷장애인 부모 동료 상담 지원 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턱없이 부족한 예산부터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측은 “발달장애인법을 이행하려면 매년 최소 427억∼815억 원이 필요한데 정부는 발달장애인 지원에 올해 예산엔 단 85억원만 반영했다”며 “이는 박근혜 정부(90억원)보다도 더 삭감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발달장애인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돕는 ‘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제’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치매 하나로 한 가족이 붕괴가 일어난다며 국가 책임제가 됐다. 발달장애인은 태어나면서 전 생애 주기별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발달장애인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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