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없는 성관계 강간죄 처벌” 법무부 신중론

여가부 입장과 뚜렷한 시각차
여론수렴·사회적공감 먼저…

‘미투(#MeToo) 운동’을 계기로 동의가 없는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지만, 법무부는 회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비동의 강간죄 개정을 하기 위해선 여론 수렴과 사회적 공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론을 펴고 있다. 지난 8일 공개한 범정부 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비동의 강간죄 개정은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 작업을 맡고 있는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인지부터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강간죄 조문 해석과 판례가 바뀌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 제도 개선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법무부가 비동의 강간죄 개정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 정부 차원의 법 개정 추진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분위기는 여가부와 차이가 있다.

정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현안보고에 참석해 “국제 기준인 ‘동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잣대로 강간 기준을 폭 넓게 봐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가부는 관련 법 개정을 위해 법무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서 ‘성폭력을 신변 안전 및 육체적, 성적, 정신적 온전성에의 권리에 반하는 범죄로 특정해야 한다’고 한국에 권고했다. 해외사례를 보면 영국은 폭행이나 협박이 전혀 없었더라도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으며, 미국과 독일에서는 단호한 거절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도 강간죄가 성립된 다수의 판례가 존재한다. 여가부 관계자는 “여가부는 국제기준에 부합될 수 있도록 강간죄 성립요건에 피해자의 동의여부를 법에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입법이 아닌 사법부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안이한 시각이라는 의견도 있다.

수십 년간 굳어진 판례가 법원에서 자연스럽게 바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성범죄를 전담하는 한 국선 변호사는 “최근 들어 개별 판사들에 따라 강간죄를 기존보다 확대 해석해 유죄를 판결하는 경우를 보긴 했지만, 일괄적으로 법원이 하나의 판결 기준을 정립한다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 성립 기준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 법원 판례는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최협의설)’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강간죄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2012년 법원의 강간죄 해석을 비판하며 “사법부가 이를 포기하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강간죄 성립 범위 확대는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형법 297조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반항을 곤란하게 한 상태’로 개정하고, 강간죄의 폭행 또는 협박 수준을 강제추행죄 기준과 동일하게 완화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경미한 폭행이 있었거나, 폭행ㆍ협박이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도 분명히 규율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법률에 일종의 공백이 있다”며 “이번 기회에 성범죄의 여러 가지 행위태양, 피해 대상 등에 따른 형벌과 형량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성범죄 법 체계를 완전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은수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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