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사각지대’ 이주여성들…성폭행 당해도 쫓겨날까 말 못해

-고용주 허락때만 사업장 변경가능 고용허가제 ‘족쇄’
- ‘신고하면 한국서 내쫓는다’ 협박에 참을 수밖에
- 한국어 서툴러 피해 사실 입증도 어려워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지방 농장에서 버섯채취와 포장 일을 하고 있는 캄보디아 외국인근로자 A 씨는 한국인 직원들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 버섯을 따고 있으면 남자 동료들은 “와~섹시한데”라며 수시로 엉덩이 쳤다. 하지 말라고 하면 그들은 “장난이야. 우리는 가족이야 문제 없어”라고 답했다.

한국인 관리자와 동료들은 술에 취하지 않으면 집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하며 대낮부터 술을 먹였다. 술에 취하면 모텔로 데려가 강제로 키스를 하고 몸을 더듬었다. 

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여성들의 #Me Too’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이주여성들의 미투를 지지했다. [제공=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직장을 옮길 수 있는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지난 2004년 8월 시행된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려면 고용주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고용주의 동의를 받은 사람에 한해 한국에 체류하는 3년 동안 사업장을 3번 바꿀 수 있다. 성추행 성폭력 피해사실을 사업주에게 알려도 사업주가 인정하지 않으면 가해자와 함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고용주의 허락없이 사업장을 벗어나면 ‘불법체류자’가 돼버린다.

고용주가 생존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주들은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 사실을 말하면 너희 나라로 보내 버린다”, “이번만 참으면 체류기간을 늘려주겠다”는 협박이 대표적이다.

고용허가제에 성희롱이나 성폭행 등 부당한 처우를 당했을 땐 예외적으로 사업주의 동의 없이도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는 예외규정이 있지만 실효성은 매우 낮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노동자가 피해사실을 직접 입증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B 씨는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사업주에게 (성폭력을) 당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며 “어디에 신고해야 하느냐고 묻는 것조차 어려웠다. 동료한테 털어놓는 걸로 위로 받고 참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이주여성상담센터와 대구이주여성상담센터가 지난 2016년 베트남ㆍ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 농업노동자를 2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피해를 당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이유로는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64.4%) 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주여성 노동자가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더라도 통역관을 구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법원에 가서 진술을 하려고 해도 소수 언어의 경우 통역관이 거의 없다”며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전에 통역의 벽에 부딪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고용노동제를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대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은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 쫓겨날까 봐 말 조차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고용허가제를 개선해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이중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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