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선배 말엔 ‘다 나 까’로 대답해!”…대학가 군기잡는 ‘젊은 꼰대’

-군대 뺨치는 군기…장기자랑도 강요
-사생활 캐묻는 ‘블랙리스트’ 선배도
-“역지사지로 대학가 꼰대 문화 깨야”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17학번 꼰대 때문에 힘들어요”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늙은이를 이르는 은어’, ‘선생님을 이르는 학생들의 은어’지만 20대가 다수인 대학에서도 ‘꼰대 문화’는 똑같이 발현된다. 한국사회의 갑질 문화와 군기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캠퍼스 ‘젊은 꼰대’ 문화는 타파해야할 악습으로 꼽힌다.

캠퍼스 꼰대 문화로 고민하는 사연글. [사진=중앙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캡처]

▶“카톡 말투가 왜 그래? 넌 ‘다’나 ‘까’도 모르냐?”=불과 한두살 차이인 선후배 관계에서 수직적 위계관계를 강요하는 일은 예사다. 군대식 군기 문화를 강조하는 예체능 계열은 특히 그 정도가 심하다.

신입생 김성환(20ㆍ가명) 씨는 최근 17학번 선배로부터 “카톡 말투가 그게 뭐냐”는 핀잔을 들었다. ‘~했습니다’나 ‘~입니까’라고 끝나는 말투를 사용하라는 강요였다. 심지어는 선배 전화를 ‘여보세요’라며 받았다는 것마저 꼬투리 대상이 됐다. “네 선배님”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육두문자가 날아왔다. 재수해 나이가 같은 후배에게조차 예외는 없었다.

김 씨가 “대화 불가능한 꼰대 때문에 여기가 군대인지 대학인지 헷갈린다”며 온라인에 하소연하자 “존경받고 싶다면 선배로서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부터 보이는 게 먼저”라는 공감 댓글이 빗발쳤다.

학기 초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서 새내기에 장기자랑을 강제 할당하는 것도 대표적인 꼰대 문화 중 하나다. 한림대 성심병원이 간호사에 장기자랑을 강요해 거센 비판을 받은 게 불과 수개월 전이지만 대학에서 ‘전통’이란 이유를 들며 신입생에 장기자랑을 강제 할당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신입생 박영주(20ㆍ가명) 씨는 최근 학과 행사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준비하란 압박을 받고 있다. 선배들은 ‘꼭 하라는 게 아니라 그런게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라며 박 씨에게 여자 아이돌 노래를 언급했다. 박 씨를 비롯한 동기들이 갈팡질팡하자 “요즘 신입생은 정신이 빠졌다”며 일부러 수군거리는 선배도 있었다. 박 씨는 “새내기가 기쁨조냐”며 “즐겁게 놓고 싶으면 본인들이 직접 춤추라고 하고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생회 얘기 한다더니…“넌 몇명 사귀어 봤어?”= 술자리 꼰대 문화도 가관이다. 술자리의 편한 분위기를 빌미로 초면에 집요하게 사생활을 물어 불쾌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젊은 꼰대들이 ‘인생 경험’을 설교하며 친해지자고 굳이 공유하고 싶지 않은 영역까지 선배 권한으로 침범하는 사례다.

대학생 한인정(21ㆍ가명) 씨는 새내기 때 불려간 술자리에서 연애 경험을 집요하게 묻는 선배에게 불쾌한 경험을 했다. 한 씨는 “학생회 공지사항을 전달해준다며 불러내더니 새내기 땐 연애를 해봐야 한다는 얘기만 주구장창했다”며 “그날 처음 본 선배가 술에 취해 헤어진 여자 얘기를 하는 것도 모자라 너는 연애를 몇 번이나 해봤냐며 꼬치꼬치 캐물어 당황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선배는 남녀 불문 ‘블랙 리스트’에 올라있는 요주의 꼰대였다. 학생회 임원이란 점을 악용해 수시로 후배를 불러내 술자리 안주삼는 버릇이 후배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젊은 학생들이 대다수인 캠퍼스에서조차 발생하는 꼰대 문화의 본질은 자신의 지배력을 과시하고 싶은 권위주의에서 비롯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국사회의 꼰대 문화를 분석한 책 ‘꼰대의 발견’(아거ㆍ인물과 사상사). [사진=인물과 사상사 홈페이지]

한국사회의 꼰대 문화를 분석한 책 ‘꼰대의 발견’(아거ㆍ인물과 사상사)은 꼰대 문화가 ‘민주주의 사회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비판한다. 개인의 의사표현을 제한하고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권위적 태도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너도 우위에 서라’는 명제가 참이 되면 사회 구성원 각각은 각자도생의 경쟁사회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통찰도 뒤따른다.

저자가 제시한 꼰대 문화의 해법은 ‘역지사지’다. 책은 몇년 더 살고 몇년 더 길게 경험했다고 해서 남과 다른 성숙한 존재가 될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내가 타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인정하는 게 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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