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의료기 국산화 1호·척추임플란트 1호…솔고바이오 김서곤 회장

대부분 자체개발 숱한 국내 1호 기록…팔순 다 된 나이에도 연구개발
“청년창업, 정부지원 늘리기보단 규제 줄여서 활성화하는 게 바람직”

[헤럴드경제=조문술 기자]“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기업가의 인생은 대개가 실패의 역사다. 실패에서 한 수 배우고 다시 일어서며, 또 실패하고 재기하기를 반복한다. 실패에 익숙해야 성공에도 능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실패의 경험들은 곧 벽돌이라는 건축재료가 된다.

김서곤(78) 솔고바이오메디칼 회장은 팔순이 가깝도록 이 벽돌을 쌓아올리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서탄로 154), 오산천 금암교를 건너자 언덕 위에 낡은 벽돌건물이 나타난다. 솔고바이오의 본사와 공장이다. 회사는 지난 10일로 창립 44주년을 맞았다.

“인생은 실패라는 벽돌을 쌓아올리는 과정이다. 그 꼭짓점을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는 모두 생과 사의 중간에 있는 과정일 뿐이다.”(누구나 저마다의 실패를 안고 산다-2012년, 휴먼큐브, 김서곤)

[사진설명=김서곤 솔고바이오메디칼 회장이 경기도 평택시 서탄산업단지내 본사 전시실에서 척추임플란트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연찮게 시작한 사업, 짝퉁느낌 브랜드명 ‘Solco’=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군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고학으로 1962년 대학(성균관대 법학)을 나왔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막 착수됐던 때였지만 변변한 산업이 없으니 일자리는 희귀했다.

생업을 위해 여러가지 장사를 전전했지만 실패해 알거지가 됐다. 1970년 한 의료기기 수입회사에 취업해 영업일을 한 게 오늘의 솔고바이로로 이어진 계기다.

1974년 우일공업사를 창립, 수술기구 국산화에 도전한다. ‘시발차’ 제조에서 모티프를 얻어 국내 처음으로 의료기기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한 길이었다. 재료도 제조장비도 노하우도 아무것도 없었다.

“수술가위, 핀셋, 지혈도구 같은 수술기구 제조부터 시작했다. 공작기계가 없던 시절이니 쇠톱으로 스테인리스 철판을 자르고 가열해서 두들겨 만들어야 했다. 몇 년 했더니 금속을 다루는 노하우를 제법 익히게 됐다.”

우일공업사가 만든 수술기구는 품질이 좋았다. 브랜드도 외산 느낌이 나도록 ‘Solco’라고 붙였다. 별다른 뜻은 없었다. 당시 ‘-co’로 끝나는 외산 브랜드가 많았던 것 뿐이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쌌기에 의료기기 판매상들은 앞다퉈 솔고 브랜드를 사줬다. 솔고는 한참 뒤에야 ‘率高(거느림이 높다)’라는 뜻을 갖게 된다.

1977년엔 회사 이름도 솔고로 바꿨다. 병원에서 쓰는 웬만한 수술기구는 거의 다 만들게 되자 자심감이 붙었다. 1979년 자체 카탈로그를 만들어 전국에 뿌렸다. 국산임을 드러낸 게 화근이 됐다. 이후 솔고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1980년 그래서 첫 부도가 났다.

김 회장은 재기를 위해 군납망을 뚫었다. 1981년 군납이 시작되면서 솔고는 국산임을 당당히 밀어붙였다. 그는 “수술기구는 수작업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손재주 좋은 민족이 없다”며 고객들을 설득했다. 먹혔다.

그렇게 순풍을 타는가 싶던 사업도 1988년 올림픽 이후 노동쟁의가 심해지고 인건비가 급등하면서 다시 흔들거렸다. 수작업이 많은 수술기구 제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1호 기록, 도전과 응전=김 회장이 다각화로 눈을 돌린 것은 정형외과용 임플란트와 온열치료기. 외산이 100% 장악한 정형외과용 임플란트의 국산화가 시급했다. 예의 그 독학(獨學) 기질로 김 회장은 원서를 사다 읽고 자체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경영자이자 개발자, 엔지니어, 연구소장이다.

재료를 스테인리스에서 티타늄으로 변경한 임플란트가 그래서 탄생했다. 가볍고도 튼튼해진 임플란트(척추·관절용) 제품의 임상을 끝내고 보험가격도 등재했다. 국산 대체를 위해 기존 외산 보다 40% 싸게 등록한 게 화근이었다. 보험가 보다 낮아 정형외과에서 채택을 해주지 않았다. 의사들에게 돌아오는 수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고생길도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거짓말처럼 해소됐다. 달러값이 급등하자 수입가격이 높아져 솔고바이오의 제품이 각광을 받은 것이다. 솔고바이오의 임플란트는 현재 국내 정형외과 의사들이 가장 신뢰하는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 동양인 체형에 맞는 임플란트도 처음 개발한데 이어 미국 등 서양인 체형용 제품 개발도 추진 중이다.

척추임플란트는 퇴행성 척추질환, 척추골절, 척추측만증, 목디스크 등과 같은 척추질환 치료의 표준 수술방법인 척추고정술 및 유합술에 사용되는 재료를 말한다.

솔고바이오메디칼은 경추, 흉, 요추 치료를 위한 임플란트 사업을 국내 최초로 시작해 100% 자체 제조한다. 2015년엔 미국시장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김 회장의 관심은 헬스케어 분야로도 뻗어 있다.

한국의 온돌문화에서 착안한 온열치료기도 솔고바이오의 주요 사업 중 하나. 1993년 국내 최초로 가정용 의료기기 온열매트를 개발했으며, 이후 온돌침대 등도 출시해 온돌의 현대화에 매진하고 있다. 김 회장의 아호가 온돌(溫突)임을 덧붙여 무엇하랴.

“의료기기 업체로서 40여년 하다보니 건강에 대해 나름의 개념을 가지게 됐다. 솔고의 존재의미가 헬스케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온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돌은 난방장치를 넘어 인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위대한 건강장치다.”

솔고바이오의 온열매트는 금속열선을 발열체로 사용하는 일반 전기매트와 달리 천연 숯 성분의 탄소발열체를 적용, 온도가 상승할수록 전류의 공급이 줄어들어 소비전력이 절감된다.

독자 개발한 ‘SR(탄소반도체형) 가변발열시스템’은 미래형 온돌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정유회사나 선박회사에 납품돼 각종 배관의 온도를 유지하고 외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과열에 따른 화재발생 위험이 없는 게 특징이다.

김 회장은 질병과 노화의 근본원인인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수소수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가정용 수소수생성기도 10여종 개발해 판매 중이다. 이상은 모두 자체 개발이자 국내 1호 기록들이다.

김 회장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특별한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살기 위해서 시작했고,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에 눈을 돌려야 했다”며 “그 결과 40년 넘게 회사를 지속하고 있고 경영이념도 갖게 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설명=김서곤 솔고바이오메디칼 회장이 경기도 평택시 서탄산업단지내 본사 전시실에서 척추임플란트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신기술, 새 먹거리 발굴=신약과 마찬가지로 신의료기기에 대한 국내 건강보험의 대접은 박하다. 기존 제품 보다 보험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정책 탓에 신약이나 신의료기기 개발 의지를 꺾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의료현장에서는 제품의 품질이나 기능성 보다는 관행과 리베이트가 주요 선택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특히, 국산 제품에 대한 푸대접은 건강보험쪽이나 의료계나 마찬가지라는 게 현업 종사자들의 공통적인 불만이다.

김 회장은 “2006년 솔고바이오의 척추임플란트 국산화 당시 외산제품 가격은 개당 400만원에 달했다. 이후 솔고바이오의 시장 진입으로 가격은 100만원까지 하락했다”며 “관련 기업들의 기술력과 노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 유럽 동남아 등 활발한 해외 진출은 이런 애로에 대한 우회전략이다.

최근 미국내 주요 의료기기 회사들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솔고바이오의 차별적 경쟁력은 각종 임플란트재료를 드릴 등 전용 수술기구와 같이 공급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은 아시아권에서 유일하다. 수술기구 제조업으로 출발한 덕분이다.

환자 맞춤형 3D프린팅 임플란트 개발도 시작했다. 현재 척추수술은 환자 맞춤형 임플란트 시술로 맞춰져 있다. 줄기세포 임플란트 등장에도 대비, 줄기세포 전달기구(Delivery System)를 연구 중이다.

제품면에서는 척추최소침습수술(Minimally Invasive Spine Surgery) 및 척추내시경수술(Endoscopic Spine Surgery) 등 새로운 수술기법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임플란트 개발도 한창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예상되는 최소 침습 척추 내시경수술(Spinal endoscopic surgery) 임플란트의 막바지 개발이 진행 중이다. 2019년부터 제품을 출시, 국내시장을 선도하고 해외로도 나간다는 계획이다.

창업선배 김서곤 “청년창업, 정부지원 늘리기보단 규제 줄여서 활성화”=창업 45년차의 김 회장도 요즘 현실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으로 길러진 청년세대가 의사, 변호사 등 소수의 보장된 일자리로만 몰린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사교육은 극성을 부릴 수밖에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계층간 이동사다리가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으로 독점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창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견해를 말했다. 과잉보호와 과잉지원은 창업기반을 약화시킨다고 했다. 지원제도에 의존해서 연명하다 접는 류의 이른바 ‘먹튀창업’ ‘좀비창업’ 같은 것에 대한 우려였다. 대신 누구나 어떤 분야든지 창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사전적 능동체계에서 사후적 수동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창업은 국가의 지원으로 되는 게 결코 아니다. 일단 시장에 내던져져서 선택받게 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과잉지원은 창업기반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freiheit@heraldcorp.com

▶김서곤 회장 약력

*1940년 전남 화순 출생

*광성고·성균관대 졸업

*1974년 우일공업사(솔고산업사) 설립

*2000∼2005년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2000년∼ 솔고바이오메디칼 대표이사 회장

*2013년∼ 백세건강연구소(옛 솔고의공학연구소) 이사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