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구속]붕괴된 신화…샐러리맨 신화에서 영어의 몸으로

-헌정사상 네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 오명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신화
-YS 발탁 정계 입문 뒤 파란만장한 정치역정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결국 영어의 몸 신세가 됐다.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50대 국회의원, 60대 서울시장과 대통령이란 화려한 성공신화를 써온 그는헌정사상 네 번째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지게 됐다.

엇갈리는 평가와 호불호를 떠나 그가 우리 현대사의 거목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진제공=연합뉴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굴껍데기처럼 들러붙었던 가난’ 그 자체였다.

온 가족이 단칸방에서 살면서 끼니는 술지게미로 때우기 일쑤였고, 이 때문에 학교에선 ‘술 냄새를 풍긴다’고 구박받곤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 장사를 돕다 야간상고를 다니던 시절에는 풀빵과 뻥튀기를 팔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상경해 일일잡부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속에서도 청계천 상인에게 얻은 헌책으로 주경야독해 1961년 고려대 상대에 입학했다.

대학시절에도 가난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청소부 일을 얻어 새벽부터 리어카를 끌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상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돼 1964년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을 때까지 6개월간 옥살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에게 항상 따라붙는 ‘샐러리맨의 신화’는 1965년 현대건설 입사와 함께 시작됐다.

그는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특유의 저돌적인 추진력과 일에 대한 집중력을 인정받아 입사 2년도 안 돼 대리로 승진하고, 29세에 이사, 35세에 현대건설 사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후에도 현대 계열 10개사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며 모든 샐러리맨들의 ‘살아있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제작돼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92년 당시 신한국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아 전국구 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노무현ㆍ이종찬을 꺾고 당선되면서 정치에서도 신화를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을 받으면서 자진사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야인으로 살았다.

이 때 젊고 유능한 금융맨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 재미동포 김경준 씨와 인연을 맺었는데 결과적으로 악연이 되고 말았다.

이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선 3기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반대여론과 극단적인 성장제일주의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체계 개편, 서울숲과 서울광장 조성 등 대규모사업을 밀어붙여 성공을 거두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도약했다.

2008년 2월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신화는 마침내 정점을 찍었다.

대통령 재임시절 실용주의를 내세워 다수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경제영토를 확장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업적도 남겼다.

그가 구속 전 입장문에서 “재임중 세계대공황이래 최대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밝혔듯이 한국이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야심차게 추진한 4대강 사업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며, 친형인 ‘상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친인척과 측근비리가 줄을 이으면서 임기 말에는 국정추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서 다스는 누구겁니까’라는 질문은 퇴임 이후까지 끊임없이 따라붙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결국 검찰조사를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 전 대통령이 돌아선 측근들의 명백한 진술과 증거 앞에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마지막 소명 기회인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포기하면서 구속 수감을 자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앞으로 오랫동안 힘겹고 외로운 법정공방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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