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꽃길 산책

1년 24기(氣)와 72후(候)를 일컬어서 기후(氣候)라 한다. 1년 열 두 달을 각각 반으로 나눈 것이 24절기, 각 절기를 세 개로 잘게 쪼개면 72절후. 소한·대한·입춘·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 등 24절기 중 여덟 절기는 15일마다 한 번씩 120일 동안 차례로 온다. 여덟 절기를 각각 삼등분 하면 5일에 한 번씩 120일 동안 모두 24절후가 된다. 매 5일, 즉 1후마다 봄바람 한 번 불면 한 가지 꽃이 핀다. 모두 24가지 꽃이 피는데, 제일 먼저 피는 꽃이 매화다.

매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워 은은한 향기를 찬바람에 실어 보낸다. 퇴계 이황이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뜬다. “매화에 물을 주라!” 학문을 갈고 닦아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선비에게 매화는 그렇게 소중하다.

제일 먼저 매화 꽃 피는 마을은 어딜까? 순천시 매곡동 탐매마을. 가장 먼저 피는 매화나무는? 탐매마을 김준선 교수댁 앞마당 매화나무. 순천 꽃길을 걸었다. 탐매마을 홍매에 취했다. 공마당길 야생화에 넋을 잃었다. 팔마비에 새긴 순천사람들의 용기에 감탄했다. 순천을 감싸고 흐르는 옥천 맑은 물가에 옥천서원이 있다. 호남 최초 사액서원이다.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1454-1504)을 배향한다.

김종직 문하에서 공부한 김굉필은 1480년(성종 11년) 생원시에 합격한다. 1494년 경상도관찰사 이극균의 천거로 중앙 관직에 나아간다.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1498년(연산 4년) 성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스승이 쓴 “弔義帝文”(조의제문)을 실록에 삽입한다. 초나라 장수 항우가 초나라 황제 의제를 죽이고 서초패왕에 오른다. 결국 천벌을 받아 제 목숨을 잃는다. 수양대군이 임금 단종을 죽이고 세조가 된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니 결국 천벌을 받을 것이다. 조의제문 때문에 사림파 선비가 화를 입는다. 무오사화(戊午士禍)다. 김종직의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쪼개 목을 자른다. 제자 김굉필은 유배형을 받는다.

유배지였던 평안도 희천에서 정암 조광조를 가르친다. 순천으로 이배되어서는 최산두와 유계린을 가르친다. 1504년 왕권강화에 나선 연산군은 또 다시 갑자사화(甲子士禍)을 일으켜 선비들에게 화를 입힌다. 김굉필은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 1506년 폭정에 반기를 든 신하들은 연산군을 몰아낸다. 중종반정(中宗反正)이다. 정암 조광조와 신재 최산두 등 김굉필의 제자 신진 사림은 개혁을 서두른다. 안타깝게도 1519년 훈구대신들이 일으킨 기묘사화(己卯士禍) 역풍에 휘말려서 화를 당한다. 정암 조광조는 유배지 화순에서 사약을 받는다.

신재 최산두는 유배지 동복에서 하서 김인후를 가르친다. 하서 김인후는 송강 정철을 가르친다. 정계로 진출하지 않아 화를 면한 유계린은 두 아들 성춘과 희춘을 가르친다. 이리하여 영남사림 김굉필은 유배지에서 호남사림 주류를 형성한다. 호남사림은 기호학파의 한 축을 맡아서 서인(西人)에 합류한다.

김굉필을 문묘에 배향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친다. 1568년 옥천서원을 사액한다. 1577년(선조 10년) 김굉필에게 시호 문경(文敬)을 내린다. 1610년(광해 2년) 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과 함께 김굉필을 성균관 문묘에 배향한다. 동방5현(東邦五賢)이다. 김굉필을 일컬어서 동방5현 중 으뜸이라 한다. 순천이 기이하고 고운 것은 매화 때문이 아니다. 사람 때문이다.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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