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의 공습]마스크 안쓰는 노인들…“탄광 먼지 먹고도 잘 살았는데”

-외출자제령에도 탑골공원 노약자들 북적
-대부분 마스크 안써 “얼마나 더 산다고”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서른 다섯살에 독일에서 광부로 8년 동안 일할 때 이보다 더 심한 먼지 먹고도 말짱했어. 거기는 더 뿌얘. 눈 말고 다 시커멓게 변해서 나와. 그래도 팔십 다 되도록 살고 있잖어.”

올해 76세인 곽 할아버지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봄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 못 나가면 답답해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며칠 전 다리 수술을 한 뒤 집에 누워있는 아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루에 한 두 시간은 꼭 바람이라도 쐬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앉아있는 노인들. 미세먼지 속에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미세먼지 ‘나쁨’ 경보가 내려진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선 마스크를 쓴 노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원 밖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걷고 있는 것과 대비됐다. 공원 안 벤치에 앉아 있는 50~60명 노인들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5명도 안됐다.

그들에게 미세먼지는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최병수(83) 씨는 “우리 때는 흙먼지 다 뒤집어 쓰고 살았다. 그래도 지금 말짱하다. 미세먼지라는 말이 생겨서 다들 걱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렇게 맑은데…봄 하늘을 언제 또 볼 수 있겠소” 나무 사이로 하늘을 가리켰다.

집에 있기 답답해 공원을 찾은 노인들은 마스크를 쓰는 것은 고문과 같았다. 한 손에 지팡이를 쥐고 벤치에 앉아있던 이모(73) 씨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면 숨 쉴 때마다 안경이 뿌옇게 된다. 눈 앞이 안 보이고 숨도 못 쉬겠는데 얼마나 더 살겠다고 그 고생을 하겠느냐”고 했다.

탑골공원 뒷골목에서 웅크려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던 한 노인은 “마스크 살 돈이 어디 있느냐. 다 사치”라고 말했다. 

[사진=탑골공원 주변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 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미세먼지 마스크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일반 면 마스크는 황사나 미세먼지 입자를 걸러내지 못하지만 일반 면 마스크를 쓴 노인들도 보였다. 입자 차단 성능을 나타내는 ‘KF80’, ‘KF94’, ‘KF99’에 대해서 알고 있는 노인들은 없었다.

미세먼지로 바깥은 떠들썩했지만 탑골공원은 태평했다. ‘자연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박 모(79) 씨는 “미세먼지보다 술과 담배가 훨씬 나쁘다. 공기 중에 먼지를 피할 수 없다. 먼지를 어떻게 떠나서 살아”하고 웃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는 “나는 미세먼지 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숨을 안 쉬면 돼”라고 껄껄 웃었다. 그들에게 미세먼지 걱정은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었다.

“사람도 병들고 하늘도 병들고 땅도 병든 거야. 이파리 같은 게 생(生)이라, 줄기에 매달려 뿌리에 의지해 산다. 감사할 줄 알고 살아야 하는데 인간만 잘난 줄 알고 살지 않았나.”

say@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