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의 목공이야기]목수가 바라본 임진왜란

2014년 여름, 고향 전남 함평으로 가는 도중 세월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팽목항을 찾았다. 가는 길의 울돌목. 거북선이 근엄한 시선으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1597년 명량해전이 있었던 곳.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북선과 판옥선(板屋船)은 누가 만들었을까? 임진왜란에서 왜 해전은 우리가 모두 승리했을까? 조선목수들이 일본목수와의 대결에서 거둔 승리는 아닐까?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지만 목수들의 전쟁이기도 했다. 조선의 목수들은 배를 튼튼하게 만드는 법을 알았다. 충파에도 견디며 화포를 쏘아대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알았던 것이다. 소나무 판재를 위로 쌓아올려 만들며 특히 나무못을 박았다.

나무못은 물에 닿으면 팽창하여 판재와 판재의 연결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바닥은 평평하게 만들어서 조수간만차가 심한 곳에서도 운항이 가능하다. 돛을 두 개 달아서 제자리 회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화포운용이 쉽도록 하기위해서였다.

일본의 안택선(安宅船)은 삼나무에 쇠못을 박아 판재를 잇는데 바닷물에 녹슬기 쉽고 큰 힘을 받으면 쇠못구멍이 커져서 판재가 분해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화포 장착이 쉽지 않았다. 바닥이 뾰족하고 삼나무가 가벼워 속도는 빠르지만, 조수간만에 차가 심한 곳엔 뻘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또한 무른 삼나무는 견고성에 한계를 보였다. 돛이 하나밖에 없어서 제자리 회전이 잘 안되고 화포운용이 쉽지않았다. 그네처럼 1~2문 달았지만 전투에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이순신 장군이 전략과 전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뒷받침 해준 건 바로 목수들이다. 거북선은 이순신장군의 디자인, 나대용장군의 설계, 목수들의 제작이란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목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순신장군이 뛰어난 전술 이해력을 바탕으로 개념을 완성한 가운데 실제 디자인은 나대용장군이, 제작을 총괄하는 도편수가 설계 했을것이라 추측한다. 가구 하나도 디자이너가 이해하고 설계하기가 힘든데, 복잡한 전투용 배를 전문지식없이 설계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30년 이상의 실전을 가진 도편수 정도 되어야 가능하다.

임진왜란 관련 유적지를 가보면 판옥선과 거북선을 복원해 놨다. 내가 보기엔 오리배 수준으로 조잡하기 그지 없다. 실제로 거북선은 운항조차 하지 못한다. 겉모습의 설계정도야 지금도 할수 있지만 세부설계는 이어지지 않았다. 특히 제작기법들이 사장되어 실제 운항할 수 있는 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목수들은 조선의 목수들 보다 못한 것일까? 목칠공예를 보면 고려시대 보다 조선시대가 후퇴하고 조선시대보다 지금의 현대목공이 더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 없다고 버리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문화는 기술의 축적이다. 일본은 하나하나 더해서 지금의 문화를 만들지 않았는가?

목공을 배울 때 선생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목수로써 만들고 싶은 건 다 만들어봤지만 배만 못만들어봤다고 아쉬워하셨다. 나도 마지막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배다. 환갑이 되면 1년동안 나의 낚시배를 제작할 생각이다. 거북선모양의 낚시배를 임진강에 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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