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말한마디 한마디 음미할만하다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tvN ‘나의 아저씨’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음미해볼만하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 관계속에서의 고민과 변화 등을 읽을 수 있다.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나약한 사람들이 각자로는 힘이 없어 부대끼고 좌절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정희(오나라)와 그의 남자였지만 이제는 스님이 돼 속세를 등져버린 겸덕(원래 이름은 상원, 박해준 분)과의 관계는 그런 과정을 잘 보여준다. 동훈(이선균)의 상무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정희네에서 가진 술자리에서 동훈의 큰형 상훈(박호산)과 별거 중인 애련(정영주)이 “왜 정희 때문에 우리의 친구 윤상원이 금기어가 됐냐, 우리 서방님 박동훈의 유일한 친구다. 금기어가 되면 안 돼”라고 말했다. 이에 정희는 “오늘부로 윤상원을 금기어에서 해방한다”고 말했고 술집에 있는 일동은 술잔을 들고 “윤상원은! 우리의 추억이다!”라고 여러 차례 외치며 겸덕을 그리워했다. 후계동 사람들의 모습으로 딱 어울린다.

겸덕을 찾아가 “나에게게 오라”고 최후통첩을 날리려고 절에 갔지만 실패(?)하고 돌아온 정희가 가게 앞에 앉아서 하는 대사 “나만 굴러가고 있지 않은 느낌. 그래서 새벽에 나와 앉아있어”는 공감을 자아낸다. 정희네 가게에서 잡을 자며 생활하는 정희가 자신의 집을 장만하지도 않은 채 거짓말로 퇴근해서 집에 가는 시늉을 하지 않았던가? 그 행위가 이 한 말로 다 이해된다. 정희네 앞에 앉아있는 정희 옆에 지안(이지은)이 잠깐 서 있어주는 그림도 많은 걸 이야기 해주었다.

자신의 휴대폰에 도청장치를 심어 이지은이 도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선균의 “전화 줘”라는 한마디는 시청자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떠나버린 이지은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특히 14회에서 지안은 “난 이제 다시 태어나도 상관없다”고 했다. 동훈에게 해가 될까 떠나면서도 마치 그를 안심시키듯 “또 태어날 수 있어. 괜찮아요”라고 했다.

14회에서 말도 없이 결근한 지안(이지은)을 찾아다니던 동훈(이선균)은 의외의 곳에서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이른 새벽, 정희(오나라)는 “회사 그만뒀다. 새 직장 근처로 이사 간다”고 말한 지안을 만났다. 쓸쓸함에 지쳐 가게 밖에 홀로 앉아있던 정희의 곁을 잠시 지켜줬다는 지안은 “이 동네가 참 좋았다”라는 말을 남겨두고 떠났다고. 그리고 설마 했던 지안의 부재가 현실임을 깨닫고 헛헛해하던 동훈은 지안의 전화를 받았다.

일부러 퉁명스럽게 “그만두면 그만둔다고 얘길 해야 될 거 아냐”라는 동훈에게 지안은 “그만둔다고 하면 사람 죽인 애 송별회라도 해줄 건가? 무서워서라도 하루빨리 조용히 사라져 주길 바랄 텐데”라고 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라는 지안의 말은 듣는 이의 가슴까지 쓰리게 했고, 동훈이 겨우 꺼내든 미안하다는 말에 지안은 “아저씨가 왜요?”라고 반문했다. 그리고는 울음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처음이었는데. 네 번 이상 잘해준 사람. 나 같은 사람. 내가 좋아한 사람”이라고 말한 지안은 이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살아내는 것이 너무 힘겨워 지옥 같았던 삶, 그래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았던 이 세상도 동훈처럼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 한 명만 있다면 견딜 수 있다는 의미였을 터. ‘경직된 인간’이었던 지안의 변화가 물씬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동훈은 결국 삼안 E&C의 신임 상무이사가 됐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온 동훈과 지지하는 동료들, 가족들, 그리고 동훈을 지키고자 했던 지안의 바람이 이뤄낸 결과였다. 하지만 상무이사가 된 동훈이 바라보는 사무실에 더 이상 지안의 자리는 없었다. 퇴근길, 동훈은 지안에게 ‘상무 됐다. 고맙다’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고, 망설이던 동훈은 결국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것은 결번이라는 자동응답 메시지뿐이라 그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한편, 지안의 친구이자 조력자인 기범(안승균)은 결국 경찰에 잡혔다. 취조실에 앉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박상무(정해균)를 동해로 태워 나른 날의 이야기를 하던 기범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동훈아, 우리 빨리 해뜨기 전에 속초 가서 전복 뚝배기에 소주 한잔하자. 다 끝났다.” 취객이었던 박상무가 했던 말이라며 기범이 읊은 이 말은 그저 한 번 듣고 기억했다기에 너무도 상세했고, 이에 박상무는 도청 사실을 눈치챘다.

결국, 동훈은 박상무를 통해 지안이 자신을 도청했음을, 그리고 도준영(김영민)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됐다. 여전히 도청 어플이 존재하는 자신의 핸드폰을 영화관에 두고 나온 동훈은 도준영을 만나 “이지안 데리고 무슨 짓 했냐”고 외쳤다.

도준영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윤희와의 외도를 먼저 눈치챈 것, 먼저 접근해 거래를 제안한 것, 박상무를 자른 것도 모두 지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훈을 가장 흔든 말은 도준영의 외침 속에서마저 느껴지는 지안의 진심이었다. “죽어라 도망 다니겠대. 잡히면 시작점을 불어야 되는데, 선배 인생 공개적으로 개망신당하는 건데, 선배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그건 거 걔가 아는데, 걔가 그걸 불어?” 혹여 경찰에 잡히더라도 윤희의 외도는 제외하자고까지 한 지안은 마지막까지 동훈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진실에 안타깝고 고마운 마음이 뒤섞여 떨리는 숨을 참으며 영화관으로 돌아온 동훈은 두 손을 겹쳐 핸드폰을 쥐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지안, 전화 줘”라고. 어디선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 분명한 지안을 향한 말이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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