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남은 생은 열심히 살아야죠” 1평 용접실에서 인생 2막 꿈꾸는 출소자들

-법무보호복지공단 ‘허그일자리지원사업’ 동행 취재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삶의 여정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겠다.”

11일 법무보호복지공단을 찾은 출소자 박길동(가명) 씨는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날 오후 법무보호복지공단 인천지부에서 출소자 6명은 집단 상담을 받으며 편지를 썼다.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빠르게 써내려간 사람도 있었고, 고민 끝에 겨우 몇 줄만 적은 사람도 있었다.

박 씨는 과거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모범수로 30년의 형기를 채우고 지난달 가석방됐다. 기댈 가족도 없다. 밥벌이를 제대로 해 다시는 어떤 범행도 저지르지 않겠단 생각으로 공단을 찾았다.

이날 경기도 인천 서구에 위치한 법무보호복지공단 지부를 찾아 출소자와 보호관찰자를 대상으로 한 ‘허그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을 일일 체험했다. 개별ㆍ집단 상담으로 출소자의 취업설계를 돕고(1단계) 기술교육을 지원하며(2단계) 정보를 제공하고 면접을 돕는 (3단계) 세 단계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신청부터 수료까지 최대 1년 가까이 걸리는 장기 프로그램이다.

[사진=기자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인천지부에 마련된 기술교육원에서 용접교육을 받고 있다. 재소자의 인권 문제를 고려해 기자의 체험 사진으로 대체했다. 사진=정희조 기자]

운전면허ㆍ자격증 없다 하니…“사무직은 알선 힘들어요”=지원자는 두 차례 개별상담을 거쳐야만 집단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기자는 사무실을 방문해 지원 신청을 했다. 전화나 인터넷 신청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공단에서 출소자의 출소증을 확인한 뒤 상담 안내를 돕기 위해서다. 범죄경력이 없는 기자는 출소증 확인 절차를 생략하고 일일 상담을 받았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상담 직원과 1대 1로 대화를 나눴다. 직원은 사업자 등록이 돼있는지, 기초 수급을 받고 있는지, 4대 보험 가입자인지 여부를 물었다. 여기에 해당하면 공단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직원은 생년월일과 거주지, 이전 경력 사항을 자세히 물었다. 출소자들에겐 범죄경력과 가족관계를 세세하게 묻는다고 한다.

“어떤 분야 취업을 희망하세요?” 직원이 물었다. 되레 “제가 어떤 분야에 취업할 수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출소자가 원하면 어떤 분야라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궁금해져서다.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경력이 없어도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일을 연계해드릴 수 있다”며 “젊은 분들이 원하는 전문직이나 사무직 알선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지원서 경력사항란에 적힌 것이라곤 고작 몇 개월 했던 입시학원 채점 아르바이트와 과외 경력뿐이었다. 취득한 기술 자격증도, 운전면허도 없었다. 직원은 인터넷으로 사무직 채용공고를 확인한 뒤 알려주겠다고 했다. 간단한 직업 선호도 검사를 끝으로 상담을 마쳤다. 
 

[사진=상담직원이 ‘허그일자리 지원 프로그램’ 신청을 하러 온 남성에게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희조 기자]

집단상담으로 웃음 찾은 박길동씨=개별상담을 마친 뒤 박 씨 등과 함께 집단 상담에 합류했다.

한자리에 모인 출소자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음주운전으로 형을 선고받아 이곳에 온 김영수(가명) 씨도, 회사를 운영하다가 경영비리에 휘말려 형을 치른 유현수(가명) 씨도 있었다. 이들은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력서 작성과 면접방법을 배웠고, 직업 훈련과 관련한 간단한 퀴즈도 풀었다.

“쇼콜라티에가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등불님?” “3번(초콜릿)이지. 콜이 똑같잖아. 그게 힌트지”

박 씨가 퀴즈의 답을 맞힌 뒤 함박웃음을 지었다. 살인죄로 30년을 복역했다고 믿어지지 않는 천진한 웃음이었다.

이곳에서 박 씨의 별명은 ‘등불’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사회에 도움되는 등불같은 사람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출소자들과 상담사들은 서로를 ‘아름드리’ ‘로딩’ 등 별명으로 불렀다.

집단상담을 마친 뒤엔 각자 진로를 선택한다. 박 씨는 이미 한 업체에 취업하기로 확정됐다. 의지할 곳 없는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업체 사장이 일찍이 취업을 확정지었다고 했다. 1년 근속하면 공단에서 180만 원의 취업수당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함께 집단상담을 받은 이경수(가명) 씨는 게임 개발자가 되기 위해 새로운 교육을 받을지 고민하고 있다. 학원에 등록한 뒤 80%이상 출석하면, 공단을 통해 최대 300만 원까지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공단 지부에서 용접 기술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도 있다. 

[사진=기자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인천지부에 마련된 기술교육원에서 용접교육을 받고 있다. 재소자의 인권 문제를 고려해 기자의 체험 사진으로 대체했다. 사진=정희조 기자]

1평 용접실에서 안정적 내일 꿈꾸다= 윤내일(가명) 씨는 바로 취업하기보다 공단에서 용접기술을 배우기로 한 사례다. 지난 1일부터 공단 용접기술교육원에 등록해 직업훈련을 받는 ‘용접초보’다.

11일 오후 공단 인천지부 꼭대기층에 마련된 용접 훈련장, 윤 씨는 전기 용접기를 들고 한창 실습 중이었다. 청바지 재질로 만든 작업복에 방진마스크 차림이었다. 훈련장에서는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계속됐다. 용접기에선 쉴새 없이 불꽃이 튀었고, 건물 안에선 쇳가루가 날렸다.

윤 씨를 비롯한 12명의 훈련생들은 1평 남짓한 개인 부스에서 연습을 했다. 16개 부스에는 전기 용접기와 Co2 용접기가 구비돼있었다. 훈련생들은 ‘히편’이라는 쇠붙이 두 개를 나란히 붙이는 작업을 하루 종일 할 예정이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자유롭게 실습하고, 교사의 개별 지도를 받는다. 다만 정식 교육 시간인 오후 4시까지는 무단으로 훈련장을 이탈할 수 없다.

윤 씨는 성범죄로 8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교도소에서 공단의 기술교육원 홍보영상을 접했다. 출소 후 기술을 배워 안정적인 새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용접공은 일용직 가운데서도 수입이 많은 ‘고소득 직종’ 이었다. 일당으로 10만 원 남짓을 받는 청소노동과는 달리 용접사는 하루 15만원의 삯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55세 이하 ‘젊은 용접공’은 인력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윤 씨도 교육과정을 마치면 한 업체에서 일하기로 확정됐다.

윤 씨는 이날 꼬박 5시간 동안 용접교육을 받았다. 그는 ‘출소자’ 딱지를 떼고 ‘용접사’로 세상에 당당히 설날을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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