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길 ’을 걷다, 치유의 시간을 갖다

혁신에 친자연까지 살아 숨쉬는 ‘원주’
금강송 사이 아침햇살에 보석같은 구룡소
‘작은 금강’ 소금산 출렁다리 신록에 새모습
장미·양귀비 축제·댄싱카니발 등 ‘축제 릴레이’

‘침엽수 사이로 빗살같은 아침햇살/ 통통 튀는 물방울은 보석처럼 고와라/ 버들치 향연을 벌린 맑고 맑은 구룡연/ 울울한 금강솔은 천년 세월 병풍이요/ 상목련, 찔레향은 계절의 향기려니/ 매순간 푸른 영상에 마음이 머무는 곳.’

치악산 구룡연의 5월 어느날 아침, 햇살은 금강송 사이를 뚫고 지나와 구룡소에 옅게 낀 물안개와 조우한다. 봄 햇살과 아침이슬, 금강송의 하모니는 치악산 숲길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록이 드리워진 구룡소(沼)는 아침햇살을 받아 에메럴드 빛 옥수위에 보석을 띄운다. 시조시인 이금자의 표현대로 치악산의 아침은 보석같이 찬란했다.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빠져나와 6㎞만 가면 차로 10분도 안걸려 치악산 구룡사 탐방지원센터를 만난다. 함께 있기만해도 치유효과가 있다는 ‘금강송 소나무숲길’ 초입부터 계곡물 소리, 새소리, 미음완보 여행자들의 재잘거림의 3중주가 상쾌하다. 세렴폭포까지는 6㎞, 비로봉 정상까지는 12㎞인데, 세렴폭포까지만 가더라도 치악 청정생태에 흠뻑 젖을 수 있다.

금강송 소나무숲길

살신성인 감동 품은 생태=오르기전에 꿩 얘기부터 듣고가야 한다. 어릴적 들은 얘기일테지만, 그것을 상기시키는 것은 치악을 대하는 국민의 바른 자세이다.

이 산에서 마음을 수련하던 한 선비가 구렁이에게 잡혀 먹히려던 꿩을 구해준다. 그날 밤 산중 오두막 여인으로 변신해 잘 곳을 찾던 선비를 미리 기다리던 구렁이는 삼경에 이르자 선비를 해치려든다. 동화를 읽은 경험이 풍부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예상할수 있듯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한 구렁이는 이 대목에서 불가능한 내기를 건다. 조선8도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절(寺)의 종이 해뜨기전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불가능하리라던 종이 한밤의 정적을 뚫고 울린다. 낮에 선비가 살려준 꿩이 머리를 종에 부딪쳐 소리를 내고는 쓰러진다. 바로 대한민국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치악산 상원사 동종이 울려 사람을 살렸고, 적악산(赤嶽山)이었던 산 이름은 이때부터 ‘꿩 치’ 자를 써 치악산(雉嶽山)이 됐다. 등산로 바로 옆에 청정옥수가 반려견 처럼 따라 다니는 산은 그리 많지 않다. 혼행을 해도 말동무가 돼 준다. 때론 평온하게 흐르며 밑바닥을 다 보이다가도, 때론 급류로 하얀 포말을 뿜어내고, 다시 절벽에 부딪쳐 힘차게 휘감아 돈 뒤엔 평온을 되찾는, 치악산의 등산객 ‘반려’ 계곡은 끊임없이 다채로운 예능감을 선사한다.

비로봉

평화의 DMZ같은 치악 정글=15분쯤 가다 구룡사를 만날 무렵부터 숲은 곧고 굵고 길게 뻗은 금강송들이 장악한다. 울울창창 금강송 숲사이에서 살아나보려는 넝쿨들이 금강송을 휘감아 오르고 작은 나무들도 살아남기 위해 땅아래 뿌리도 모자라 땅 위로 문어발식 뿌리는 꽂는다. 흡사 배달래 작가가 평화를 희구하며 그린 ‘DMZ 정글’ 풍경을 닮았다. 치악산 금강송은 왕실에서 황장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삼척, 울진의 그것과 함께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구룡사 앞 현수교형 구름다리 아래, 용이 숨어 있었다는 구룡소는 청정 옥수를 품은채 아침햇살에 반짝인다. 그 용, 동해바다로 가지 않아도 한 점 부끄럼이 없었을 것이다. 세렴폭포까지 2.5㎞는 완만하기에 남녀노소 누구든 오른다. 금강산 구룡폭포 처럼 높은 곳에서 내리 꽂지는 않지만 세렴폭포는 2단으로 휘어져 내리며 운치있게 떨어진다. 보통의 폭포와는 달리 단아함이 돋보여 동양화로서의 예술성은 더 높아 보인다. 겉으로 위세 떨지 않고, 숲안 보석들을 감춘 동악명산(東岳名山)의 면모이다. 세렴폭포부터 세상의 모든 등산 계단을 다 모아놓은 것 같은 급경사를 지나 사다리병창을 넘으면 시루처럼 생긴 비로봉(1288m) 정상이 보인다. 봄, 여름, 가을 세렴폭포에 오후2시까지는 가야만 비로봉 등정이 허락된다. 힐링에 만족하느냐, 등정의 기쁨을 맛볼 것이냐를 세렴폭포에서 점심도시락을 먹으며 정하면 된다. 원주엔 치악 외에 감악산, 미륵산, 명봉산, 구학산 등 10여개의 명산들이 산재해 있고, 영원산성과 해미산성엔 왜적을 물리친 호국정신이 배어있다.

소금산 출렁다리

굽이치는 섬강, 출렁이는 봄 다리=치악산이 원주 동쪽의 청정 생태 ‘좌청룡’이라면, 소금산-남한강-섬강은 원주 서쪽의 산소통 ‘우백호’이다. 소금산은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으로, 일찌기 절벽 돌산 사이로 굽이치는 섬강ㆍ남한강ㆍ삼산천과 어우러지면서 ‘간현 관광지’로 조성된 곳인데, 지난 1월 개통한 출렁다리 때문에 온나라에 ‘출렁다리’ 열풍을 몰고왔다. 개통땐 주변경관이 을씨년스러웠지만, 계절의 여왕 5월은 굽이치는 섬강 위로 신록이 가득한 소금산 출렁다리를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었다. 출렁다리에서 천촌만락을 굽어보는 기쁨을 만끽하겠다는 희망으로 80대 어르신부터 네살바기 어린이까지, 간현관광지 입구에서부터 가파른 오르막 나무데크길을 포함한 1.5㎞을 피로감 없이 올랐다.

출렁다리 외에도 간이역인 간현역과 원주레일바이크, 소금산 등산로와 산책로, 5개 암벽 코스, 삼산천 물놀이 등 다채로운 볼 거리, 즐길 거리가 주변에 있다.

특히 간현역에서 빨간 풍경열차를 타고 출발해 판대역까지 갔다가, 레일바이크를 타고 간현역으로 돌아오는 원주 레일바이크는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옛 간현역을 오가던 증기기관차 미니어처도 보고, 기차놀이, 승마 체험도 하며, 카페에서 정담을 나눌 수도 있다.

세렴폭포

장미ㆍ양귀비ㆍ댄싱으로 끼부림도= 혁신도시, 기업도시, 의료도시로서 일신 우일신 하는 원주는 이렇듯 청정 생태로 이름난 곳이다. 경기도 여주, 충청도 충주와 살을 맞대고 있는 교통, 군사, 경제 요충지 원주는 고려말부터 지금까지 강원도 최대도시의 위치를 점한다. 때론 고구려, 때론 신라의 영향을 받는 등 다채로운 전통을 갖고 있고 온나라 사람들이 거쳐가는 곳이기에, 변화가 빠르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이 출중하다. 그러나 자연과 문화유산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점은 다른 고도성장 도시와는 다른 면모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토지’의 박경리가 28년간 살며 전한 탈(脫) 봉건의 메시지, 최근 국제한지문화제를 마친 대한민국 한지(韓紙) 원료의 주산지로서의 면모, 여러 종교 성지가 품은 참뜻 등 원주의 전통 가치들은 보존한다. 혁신과 산업이 도시의 경제를 발전시키지만, 자연과 문학,예술, 정신문화를 숭상하는 태도가 제대로 된 글로벌 도시의 면모라는 점을 원주 사람들은 잘 안다.

끼 부림도 서슴지 않는다. 동서양 현대미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뮤지엄SAN, 2018 평창 동계올림픽때 지구촌 손님들의 환호를 받은 원주 다이내믹댄싱과 지프라인, 발효초코릿 공방 ‘초컬릿황후’, 허브나라 개설, 방치돼 있던 중앙시장 2층 창고를 청년들이 미로예술시장으로 탈바꿈 시킨 점 등은 원주사람들의 창의성과 적극성을 대변한다. 6월엔 단계동 장미축제(6.9~11), 용수골 꽃양귀비 축제(6.10~), 7월엔 섬강축제, 9월엔 댄싱카니발(9.11~16), 10월엔 ‘국제 걷기대회’와 장난감축제를 열어 1년내내 풍요로운 잔칫상을 차린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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