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에 듣는다] “남북경협은 ‘퍼주기’ 아닌 투자…한국경제 마지막 도약기회”


박승(82) 전 한국은행 총재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한국 경제계의 대표 원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 뼈대를 구성하는데 동참했지만 노동개혁이나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비판적 지지자’를 자처하고 있다.

박 전 총재는 지난 9일 서울 평창동 한 카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촛불혁명 이후 오늘의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대북관계 등 모든 면에서 판을 바꾸는 역사적 대전환점에 서 있다”며 특히 “한국 경제가 성장엔진을 교체하는 중대 시점에 있다”고 진단했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는 “남북경협이 우리에게 이익도 거두고 통일도 이루는 일종의 투자 비용”이라며 경협은 한국의 마지막 남은 도약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소득 3만달러’ 선진국 길목에 선 대한민국 대전환의 시대, 박 전 총재에 길을 물었다. 

한국경제 성장엔진 교체하는 중대시점
北 SOC·제조업 한국기업에 새로운 시장

- “남북경협은 한국의 마지막 남은 도약 기회”라고 했다. 어떤 의미이며 우리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북한에는 무진장한 지하자원과 인력이 있다. 2012년 조사로 보면 9700조원으로 추정된다. 우라늄, 희토류, 마그네사이트는 세계 1, 2위 수준이고, 무연탄, 석유, 철, 금, 흑연, 아연은 세계 10위권내 매장량이다. 거의 대부분이 미개발 상태다. 북한의 임금은 월 20만원선으로 중국의 3분의 1, 남한의 10분의 1 수준이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이 결합한다면 무서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남북경협이 되면 북한 경제성장률은 향후 10년 이상 8~10%, 남한은 5% 수준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1936년생으로 올해 만 82세인 박 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대표적 한국 경제 원로
다. 2002~2006년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1988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1989년 건설부 장관, 1993년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61년 서울대 상대를 나와 1974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노동력 잉여 후진국에서 외자의 경제개발효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스스로를‘ 중도 실용주의자’로 밝힌 박 전 총재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지지하면서도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재 퇴임 이후 중앙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로 지내며 지금도 손수 운전하면서 강연과 토론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북 경협이 열리면 남한 기업 입장에서 북한에 엄청난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과 제조업 투자 시장이 열리게 된다. 특히 900조원이라는 사내유보금을 두고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는 한국 대기업으로서는 좋은 투자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골드만삭스는 남북한이 통일되면 2050년에는 한국이 미국 다음의 세계 제2 부국(富國)이 될 것이라고 봤다. 이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부담이 남북한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북한에 쏟는 돈은 퍼주기가 아니라 일종의 투자사업으로 봐야 한다. 

900조 유보금 쌓은 대기업에 좋은 투자처
南-기술 北-자원·노동력 결합땐 큰 시너지

- 남북경협이 통일도 앞당길까

▶현 상태에서 통일되면 남북한 모두에 재앙이다. 남북한 경제력 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 당장 통일되면 북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00만명이 남하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현재 북한은 전체 국민 소득이 남한의 45분의 1에 불과하고, 북한의 1년 수출액은 남한의 이틀 분에 그친다. 향후 통일을 원활하게 하려면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을 개발해야 하고 남북한의 소득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남쪽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북한의 방방곡곡에 들어가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해서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주민이 그곳에서 먹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現상태에서의 통일은 남북한 모두에 재앙
北개발로 소득격차 줄여야 통일도 원활

- 지금의 한국 경제를 평가한다면

▶한국 경제는 성장엔진을 교체하는 시기에 서 있다. 지금까지의 엔진은 산업화 시대의 엔진, 이른바 낙수(落水)효과 엔진이었다. 산업화 엔진이란 성장은 수출이 이끌고, 수출은 대기업이 이끌며, 그래서 정부는 대기업에 특혜를 줘 기업 소득을 늘리고 기업은 그 돈으로 투자와 고용을 창출해 가계소득을 늘리는 방식이다. 산업화 엔진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다. 우선 수출 주도 엔진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수출이 두자릿 수 이상 늘어 고도성장을 이끌었는데 지난 3년간 평균 수출 증가율은 0.6%에 그쳤다. 또 대기업이 돈을 벌어도 국내 투자나 고용이 늘지 않는다. 여기서 쌓인 병폐가 2%대 저성장, 정경유착, 양극화, 빈부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교체하려는 엔진은 소득주도 성장엔진이다. 소득주도 엔진은 낙수효과와 정반대인 분수(噴水)효과 엔진이다. 기업소득이 가계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가계소득이 기업으로 간다. 가계 소득증대→가계 소비증대→기업 소득증대로 순환하는 구조다.

- 문재인 정부 1년을 총평한다면

▶총론적으로는 잘하고 있다고 본다. 개혁의 추진 방향은 옳으나 그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정책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또 분배와 성장의 균형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장 촉진적 정책에 좀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노동개혁이나 규제개혁,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데도 좀더 신축성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 1만원 도달 시점을 보다 신축적으로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정권이지만,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진보나 보수의 담을 넘나드는 실용주의적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번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文정부 일자리 창출정책, 현재까진 실패
기업 고용확대 위해 노동·규제개혁해야

- 일자리 창출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은 현재까지는 실패했다. 일자리는 원래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기업이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투자를 하더라도 고용이 늘지 않으면서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 이익은 재작년 21%, 작년 28%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가계소득이나 고용은 늘지 않고 있다. 일자리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해야 하며, 정부는 어디까지나 보완에 그쳐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동참하도록 노동개혁, 규제개혁, 각종 투자 지원 정책을 써 기업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를 주도적으로 늘리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반도체 등 특정 산업이 우리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모습인데 그에 따른 고용효과는 미미하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이다. 지금 우리 경제성장률은 3%이고 일본은 1.5%다. 그런데 일본 실업률은 2.5%이고 한국은 4.5%다. 일본 기업들은 자국내 투자를 하면서 고용을 흡수한다. 반면 한국은 산업구조가 고용효과가 없는 산업이 성장을 주도하고, 기업이 이익을 내도 국내 투자를 하지 않으며, 국내 투자를 해도 고용이 안되는 구조다. 따라서 산업구조와 기업 행태를 대폭 바꿔야 한다.

-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하나

▶규제개혁과 세제 및 각종 금융정책과 같은 유인책으로 고용 창출 업종을 활성화해야 한다.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은 서비스업이다. 제조업은 갈수록 중국이나 후진국에 따라잡히지만 서비스업은 성장 잠재력이 크다. 서비스업종이야말로 고용을 창출하는 업종이다. 물론 숙박, 음식업 등 재래식 서비스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분야는 이미 과밀상태이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고통받는 곳이 생산성이 낮은 이들 분야이기도 하다. 가야할 서비스업은 기술직, 보건의료, 교육 부문 등이다. 특히 4차산업부문, 과학기술이다. 이를 위해 4차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 이들 분야에서 옛날 잣대로의 규제들을 정리해야 한다.

- 증세 대(對) 감세, 논란이 뜨겁다.

▶세금 늘리자면 모두 반대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세금은 내고 받는 것이다. 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도록 하는 것이 재정정책이다. 복지를 늘리려면 증세는 당연히 따라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복지와 증세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율을 현행 19.3%에서 22%까지 올려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조세부담율은 25%다. 우선적으로 부동산 보유세를 비롯한 각종 자산세를 올려야 한다. 법인세, 고소득자 소득세, 필요하면 부가가치세도 올릴 필요가 있다. 법인세의 경우 일본과 미국은 내리는데 한국은 거꾸로 간다는 지적이 있는데 실효세율은 우리가 매우 낮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5%지만, 실효세율은 18%밖에 안된다. 미국은 23%, 영국은 21%다. 미국이나 일본은 법인세율을 내려주면 기업이 투자해 고용이 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법인세율과 투자 및 고용의 관계가 적으니 정부가 법인세를 좀 더 거둬 투자와 고용에 나서는 걸로 봐야 한다. 

부동산·주거비 부담이 ‘빈곤화 성장’ 주범
땅 독점·투기 막는 토지 공개념 도입 필수

- 그렇다면 소득 3만달러 시대가 오면 국민의 삶은 나아질까

▶부동산과 주거비의 고부담이 ‘빈곤화 성장’으로 이어진다. 지난 4년간 가계 소득은 9% 늘었는데 집값은 22%, 전세값은 53% 올랐다. 소득은 늘어도 삶의 질은 떨어지는 빈곤화 성장이다. 이는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확대이기도 하다. 전체 소득은 3만달러가 되더라도 기업소득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지만 가계소득은 늘지 않는 양극화가 발생해 서민생활은 나빠질 수 있다.

- 부동산 정책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부동산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부동산을 생활편익수단이 아닌 축재수단(이재수단)으로 생각한다. 지난 50년간 물가가 30배 올랐는데 땅값은 3000배 올랐다. 정부 역시 부동산을 국민생활안정수단이 아닌 경기부양수단으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땅값 상승을 부추긴다. 정부는 부동산의 축재수단화를 막아야 한다. 방법은 보유세 인상과 양도소득세 강화다. 보유세율은 미국이 시가의 1.5%이고 일본은 1.2%다. 한국은 0.15%에 불과하다. 10억원짜리 집을 갖고 있다면 미국은 연간 1500만원, 일본은 1200만원을 보유세로 내야 하는데 한국은 고작 150만원에 그친다. 반면 거래세율은 3.5%로 높다. 거래세를 낮춰 거래는 자유롭게 하되 보유자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물려야 한다. 우선 보유세는 현재의 2배로 올리고 양도소득세도 중과해야 한다.

-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은 과거에 비해 어떤가. 아울러 최근 토지공개념이 논란이 됐다.

▶미흡하다. 가격안정을 위한 단기정책에 급급하다.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다. 보유세, 양도소득세, 거래세는 다루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은 재생산이 불가능해 값이 올라도 공급이 늘지 않는다. 시장법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경제학에서도 예외로 취급한다. 때문에 부동산에 대한 정부통제가 합리화되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이 처음 나온 것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다. 토지공개념 얘길하면 좌파냐고 하는데 그럼 노태우 대통령이 좌파냐고 묻고 싶다. 땅은 공공적 이익에 합치하도록 이용돼야 한다. 그래서 땅에 대한 독점이나 투기는 허용돼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토지공개념은 대단히 필요하다. 시장경제를 건전하게 운용하기 위한 수단이다. 특히 토지는 빈부격차의 근본 원인이고, 국민 생활비 상승의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토지공개념은 꼭 필요하며 굳이 개헌안이 아니더라도 현행법으로도 추진하는데 지장이 없다.

-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서민생활 안정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꼭 필요하다. 문제는 영세사업장에 큰 부담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옳은 일을 하긴 했지만 이런 부작용을 너무 가볍게 보지 않았나 싶다. 정부가 보조금까지 주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정부 보조금을 되도록 빨리 끝내고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역시 진작 단축했어야 했다. 우리나라가 소득 3만달러 선진국인데 근로시간은 가장 길고,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없다. 근로시간 단축은 생활의 질 향상과 일자리 나눔에 도움이 된다. 다만 한꺼번에 단축하면 초과 노동이 관행화된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의 고충이 클 것이다. 기업쪽에도 부탁하고 싶다. 큰 흐름을 생각하고 기업이 맞출 필요가 있다.

복지는 투쟁의 결과물 아닌 제도적 보장
고임금 정규직 중심 강성노조 변화 절실

- 일부 대기업의 강성 노동조합도 변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밖에 안된다. 노조가 꼭 필요한 영세사업장에는 노조가 없고, 노조가 없어도 되는 고임금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강성노조를 갖고 있다. 노동문제는 투쟁으로 노동복지를 보장받을 게 아니라 노사정 협의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노동 유연성은 성장 뿐 아니라 고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재는 정규직에 유연성이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이를 대신 충족시키고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려면, 정규직의 노동 유연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도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정부는 노조도 없는 90%의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부득이 할 경우 어느 정도 해고까지 각오해야 한다. 회사가 정말 어려울 경우 등에는 노동을 이동하고 해고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대신 해고된 근로자에게는 생활 보장을 해줘야 한다.

- 한국과 미국 금리 역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이 앞으로 금리를 올려 내후년에는 정책금리가 3%대가 될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당장 한국이 따라 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경제성장률은 3%이고, 물가도 2%에 근접하고 있어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됐다. 올 하반기 중에는 한국도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야 할 걸로 본다. 적어도 2~3년 뒤에는 3~4% 수준까지 금리가 올라야 할 것이다.

정리=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사진=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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