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바라보는 시선-르포] “2주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그래도 죽기 전 고향땅 밟을 희망 생겼어”

-속초 ‘아바이마을’ 주민 중 60%가 실향민 출신
-1세대 실향민은 400여명만…대부분 70대 이상
-“남북관계 해빙은 곧 고향방문에 대한 희망”

[헤럴드경제(속초)=김성우 기자] 아바이순대 전문점, 함흥냉면가게와 새우튀김 판매점. 카페테리아와 대형슈퍼까지. 관광객들이 모여든 동네 중심부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진 마을앞 해수욕장도 마찬가지. 휴일을 맞아 이곳을 찾은 연인과 가족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관광객이 찾지 않는 곳은 다른 세상이다. 햇빛마저 제대로 들지 않는 골목 어귀에는 적막만이 감돈다. 주민센터 인근의 주택가도 마찬가지다. 인근 상가에서는 인기척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곳 집앞 낡은 평상에서 만난 장순월(82ㆍ여) 여사는 “아바이ㆍ어마이들(아버지 어머니들) 많이들 돌아갔으니께(돌아가셨으니까) 그러지”라고 설명했다.

아바이마을 주택가 골목길 모습. [사진=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지난 13일 강원도 속초의 청호동을 찾았다. 동네의 다른 이름은 ‘아바이 마을’이다. 아바이는 북한말로 ‘아버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정착하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휴전 협상중이던 1953년부터 마을주민들은 청호동에 정착을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실향민들은 북녘에서 가까운 곳이라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 이중에는 “2주만 있으면 통일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간 머물 장소로 이곳을 택한 이도 있다. 하지만 1953년 휴전, 그리고 장장 65년이 지난 지금도 고향은 ‘갈 수 없는 땅’이다.

마을에서 직접 만난 실향민 1세대들은 최근의 남북해빙 분위기에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적한 마을에서 실향민을 만날 수 있던 곳은 청호동 노인회관이었다. 마을 노인 8명이 마을회관에 앉아 있었다.

김진국(79) 청호동 노인회장은 ‘서울에서 왔다’는 기자의 소개에 텔레비전 아래 서랍장에서 ‘2003년 4월 회원명부’라고 적힌 파일을 꺼내 펼친다. 사진과 인적사항이 적힌 명부 곳곳에서는 빨간줄과 ‘사망’이 라고 적힌 이름이 적지 않다. 

회원명부를 들춰보고 있는 김진국(79) 청호동 노인회장. [사진=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같이 지내던 사람들 대부분이 돌아갔어(돌아가셨어). 지금 이북에서 건너온 사람은 몇 안돼.” 이야기를 마친 김 회장은 다시 페이지를 넘긴다 아련한듯 손짓을 멈추고 사진속 사람들을 응시했다.

김 회장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군 양화면. 속초에서 150km 떨어져 있다.

그는 인민학교 5학년 시절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남한에 내려왔다. 북진하던 한국군과 UN군이 중공군의 반격에 막혀 철수를 감행했던 1.4후퇴 당시였다. 그를 태운 것은 30평 남짓한 돛단배였다. 60여명의 마을주민이 함께 탔다. 일엽편주에 목숨을 맡긴 이들은 고향 북청군에서 출발해 흥남, 강원도 속초를 거쳐 부산까지 향했다. 김 회장은 아직도 눈내리는 흥남항의 모습이 선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의 기억엔 어린시절 다니던 인민학교 뒤편에 우뚝 솟았던 푸른 산. 학교 운동장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통일까지는 아니라도 교류가 다시 이뤄지면 고향땅을 밟아보고 싶어. 태어난 곳도 가보고. 친구들 친척들 묻혀있는 곳도 찾고…. 요새 남북관계가 해빙무드로 흐르고 있으니까 말이야.”

김 회장에게 남북평화 분위기는 곧 고향을 눈앞으로 다가서게 한 듯하다.

노인회관에서 만난 다른 실향민 김 옹(85)도 함경남도 출신이다. 북에 있는 가족들이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며 이름과 고향을 밝히길 거부했다. 

아바이마을 실향민과 다른주민들. (오른쪽부터)이하월(81ㆍ여) 여사와 장순월(82ㆍ여) 여사. [사진=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김 옹은 50년 12월12일 고향땅을 떠나왔다. 당시 인민군은 남자들에게 입대를 강요했다. 17살이던 김옹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형제들과 함께 고향땅을 빠져나왔다. 짧을줄 알았던 피난길은 주문진을 지나 더 남쪽 부산까지 이뤄졌다. 고향에는 어머니와 고모들, 여동생과 누나가 남아 있을 거라고 했다.

“‘2주만 있으면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어. 지금은 어머니한테 효도도 못하고 갑작스레 그렇게 나온 게 제일 후회 돼.” 말을 마친 그는 한숨을 내뱉는다.

“고향은 쳐다만 봐도 행복한 곳이야. 죽을 때 되니까 고향에서 묻혔으면 하는 생각만 하게 되고…. 남북 관계가 평화적으로 가면 고향에 갈거야. 가족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도하고 말야. ” 그에게 남북관계 해빙은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마을어귀 평상에 앉아있던 함경남도 이원군출신 이하월(81ㆍ여) 여사도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바이마을 주택가 벽화. [사진=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고향? 너무 보고 싶고 가고싶지. 7남매와 친정 부모님이 다같이 내려왔지만, 고향은 또 다르니까.” 굳은 표정이던 이 여사지만 고향 얘기를 할때는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현재 청호동 인구 4500여명 중 60%가량이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과 그 자손들이다. 이중 1세대 실향민들은 400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의 나이는 최소 70대 후반이다. 남북평화무드와 고향방문은 그들에게 가장 큰 소원이다.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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