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신장 떼놓고…환자가 입증하라?”

의료사고에 두번우는 환자들
소송 하면 환자만 힘들다고 회유
피해자들 “의료법 개정시급” 호소

“언제까지 의학 지식이 부족한 환자가 의료 사고 피해를 입증해야 하나요?”
최근 인천 가천대학교 길병원 산부인과에서 난소 혹 수술 도중 멀쩡한 신장을 잘못 떼는 의료사고가 벌어졌다. 병원 측은 당시 사과도 없이 가족들에게 “1개의 신장으로도 잘사는 사람이 많다”며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갑자기 신장 한 개가 없어졌지만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병원과 싸워야만 했다.

지난 16일 오후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피해자의 딸은 “현행 의료법상 의료 사고를 당했을 때 환자가 이를 증명해야 하는 구조다. 병원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의료법을 손봐야 한다”고 분노했다.

▶멀쩡한 신장을 떼놓고도 당당한 병원= A 씨는 올해 3월 인천 한 개인병원에서 난소에 혹이 보인다는 진단을 받고 2차 진료를 위해 길병원 산부인과를 찾았다. 길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 검사 결과 A 씨의 왼쪽 난소 쪽에 9㎝ 크기의 양성 혹이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진단했고, 의사는 A 씨와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복강경 수술’을 통해 혹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술 후 약 3시간이 지난 뒤 환자 가족들은 의료진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비뇨기과 전문의는 환자 측에게 “마취 후 복강경으로 난소를 확인했지만 초음파로 확인된 혹이 보이지 않아 개복했고, 혹을 찾던 중 대장부근에 혹으로 의심되는 물질이 있어 절제해 보니 혹이 아닌 신장으로 판명이 됐다”고 말했다.

환자 보호자인 딸은 “의료사고가 아니냐”고 강력히 항의했지만 의료진은 “의료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 1개의 건강하게 신장으로도 잘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환자 탓으로 돌리는 병원=의료진은 수술 동의서에 ‘개복을 할 수 있다는 조항에 서명했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A 씨가 동의한 것은 ‘난소종양 제거’를 위해 필요 시 개복을 해도 된다는 것이었지, 그 외의 혹을 제거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A 씨 측은 “복강경으로 확인한 난소에 종양이 없으면 당연히 정밀검사를 통한 위치 확인 후 수술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병원 측은 환자가 원래 위치가 아닌 다른 부위에 자리 잡은 ‘이소신장’을 가졌다며 이를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환자 측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A씨는 이소신장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환자 측은 “이소신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도, 환자 측이 이를 난소 혹 제거 수술에 말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A 씨 남편은 “난소 종양 수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장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고, 만일 필요하다면 병원 측이 사전에 고지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교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신장에 혹이 같이 있어 절제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조직검사 결과 절제된 신장은 멀쩡한 신장이었다. 크기 또한 정상 성인의 신장 크기와 같은 9㎝ 내외였다.

▶복지부 조사 들어가자 태도 돌변= 현행 법상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환자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병원과 합의,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를 통해 중재기관을 통해 병원과 합의, 마지막으로 의료 소송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두 만만치 않다.

의료분쟁조정중재 제도의 경우 피해자와 유족이 중재를 신청해도 병원의 동의가 없으면 조정절차가 개시되지 못하고 각하된다. 의료소송 역시 대형 로펌을 끼고 준비하는 병원과 싸우기란 쉽지 않다.

A 씨 가족 역시 의료사고임을 인정하지 않는 병원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A 씨 측이 병원 ‘고객 상담실’과 법무팀에 민원을 제기했을 때 모두 “수술 절차상의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만 받았다.

계속해서 항의해야 병원은 “절차상 문제는 없으나 병원에서 도의상 책임으로 병원 입원비에 대한 비용만을 보조해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A 씨 가족은 “치료비 몇 백 만원 때문에 문제제기 한 게 아니며, 병원은 과실이 없는데 병원비를 보조해주겠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답변했다.

환자를 가장 절망하게 한 것은 의료 소송으로 가도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병원 측의 태도였다. 병원 측은 A 씨 측에 “의료소송 시 판사는 다른 의사에게 문의해 과실 여부를 확인하고 판결을 내린다”며 의료 소송으로 가도 병원 입장에서는 더 수월하고 환자 측이 손해라는 식으로 말했다.

끝까지 사과조차 안 하던 병원 측이 합의를 하자고 나선 것은 보건복지부에서 조사를 나간 뒤였다. 병원 갑자기 A 씨 측에 연락을 해 “죄송하다”며 합의를 하자고 했다. 현재 가족들은 병원과 합의 중에 있다.

길병원 관계자는 “병원이 잘못한 게 맞다. 현재 환자와 원만히 합의중에 있다”며 “다만 환자가 사전 검사 과정에서 이소신장 여부를 이를 알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A 씨 가족은 “의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료사고 자체보다도 의사의 태도와 병원 대응에 더 화가 많이 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렵게 언론에 밝힌 이유는 병원을 망신 주려는 게 아니다. 다만 현재 의료사고 제도가 얼마나 환자들에게 불리한 상황인지 알리고 싶고 의료법 개정에 힘을 보태고 싶었을 뿐이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관련 글을 올려놨다. 많은 분들이 동의해 의료법 개정이 현실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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