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부의 날②]“자식이어 손주까지 독박육아”…할마들 졸혼 카드 꺼낸다

-끝난 줄 알았던 독박육아, 황혼 육아에 ‘한숨’
-노년 함께 즐기려던 부부 사이 멀어지기도
-젊을때 이어 독박육아 ‘불만’…“남편도 도와야”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 맞벌이 자녀를 대신해 손자 육아를 도맡고 있는 A(61ㆍ여) 씨는 최근 은퇴한 남편과 사이가 소원해졌다. 늦은 나이 또 다시 시작된 육아는 고되지만 부부가 함께하면 되겠거니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손주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남편이지만 막상 육아는 잘 모르겠다며 뒷짐지기 일쑤였다. A 씨는 “손주 육아로 기운을 탕진하고 나면 밥 차릴 기운도 없다. 육아와 살림의 이중고를 겪다보면 졸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맞벌이 자녀 대신한 조부모 육아자가 늘어나면서 ‘학조부모’, ‘할마’(엄마 역할하는 할머니) 등의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의 조부모 육아가 할머니에게만 전가되고 있다. 부부 중 한쪽에만 편중된 육아부담은 은퇴한 노년 부부 사이에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악재가 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21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시 거주 조부모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다수는 부부가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은퇴 가구다. 해당 조사에 응한 조부모의 절반(48.5%)은 월수입이 없었으며, 응답자의 77%가 부부가 함께 거주한다고 답했다. 조부모 육아자 중 다수는 부부가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은퇴 가구라는 이야기다.

손주 육아의 부담은 여전히 할머니 쪽에 집중돼 있다. 해당 설문에 참여한 성비를 보면 할아버지는 11.0%에 불과한 반면 할머니는 89.0%로 나타나 9배에 가까운 현격한 차이가 나타났다.

배우자가 은퇴한 가구에서조차 육아가 여성에게 전가되는 상황은 노년 부부의 결혼 생활에 갈등요소로 작용한다. 할아버지의 육아 참여와 원조가 적어 부부사이가 소원해지는 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손주를 육아 중인 B(60ㆍ여) 씨는 손주 육아로 부부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져 별거까지 하게 됐다.

그는 “두 자녀를 기를 때 육아에 손놨던 남편이지만, 손주는 끔찍히 아껴 다를 줄 알았다”며 “하지만 이유식 만들고 기저귀 가는 일 모두 내 몫이더라. 아이 밥, 어른 밥 챙기는 게 벅차 딸네 집에 들어와 있다. 부부가 오손도손 손주를 함께 키우는 친구들이 부러울 뿐”이라고 말한다. 5060 젊은 조부모가 늘어나면서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열린 교육을 하는 조부모는 늘었지만, 정작 자신과 배우자 사이의 성 역할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황혼의 손주 육아가 독박육아로 굳어지면서 손자녀 육아 중인 조부모 과반수가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난 2016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손자녀 육아 중인 조부모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중 7명(73.8%)이 손자녀 육아를 그만두고 싶다고 응답했다. 손주 육아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로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44.4%)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이처럼 조부모 육아의 고충이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손주 육아자를 위한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육아정책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조부모의 영유아 손자녀 양육지원은 금전적ㆍ정서적 측면에서 모두 확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러한 정책이 오히려 조부모의 황혼육아를 가중시킬 수 있을위험도 있는만큼, 조부모에게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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