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 의식주만 민생인가?

얼마 전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에 50대의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인 즉, 남편이 어떤 여자에 빠져 수년째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느끼고 있으나, 이를 추궁할 결정적 단서가 없어 속앓이를 해왔다는 것.

이러던 차에 “저집 남자는 새 여자가 생겨 밖으로만 나돈다”는 소문이 퍼져 딸의 혼삿길 마저 막히는 등 가정이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며, 이혼소송에 필요한 남편의 부정행위 자료 수집에 도움을 달라는 간청이였다.

이에 필자는 “아직 탐정업(민간조사업)이 법제화돼 있지 않으니, 가능하면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사설탐정처럼 직접 탐문이나 미행을 해보라”고 권하자 “모두 생업에 바빠 그럴 틈도 없거니와 한두 차례 뒤를 밟았으나 금방 놓치고 말았다”며 “경찰청이 추진하고 있는 공인탐정(민간조사원) 제도는 언제 쯤 도입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민생법안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하자, “먹고 사는 일만 민생인가”, “정치권이 ‘진짜 민생’이 뭔지 현실을 제대로 헤아려야 하는데…”라며 긴 한숨을 쉬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이와 유사한 고충 전화는 심심찮게 있는 일이지만 “먹고 사는 일만 민생인가”라며 탄식하던 목소리가 지금까지 귀에 맴돈다.

사실 우리 사회는 그간 민생을 논함에 있어 의식주 문제에 지나치게 함몰된 나머지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색다른 민생에는 둔감해 있진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의 ‘가출’이나 ‘배우자의 부정행위’, ‘민사관계 송사’ 등은 한 가정의 안위가 걸린 절체절명의 민생으로 ‘한 집 건너 국민들의 고통’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민생은 하나같이 경찰의 사생활 불간섭 또는 민사 불개입 원칙 등으로 공권력의 도움을 아예 받을 수 없는 비경찰(非警察) 사안으로 돼 있다.

즉 사적 문제의 경우 중대성이 크건 작건 그 해결에 유용한 자료의 수집ㆍ제시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니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는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은 생업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전문성 부족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효율적으로 획득함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이를 모른 채하고 있을 것인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진정 민생이 걱정된다면 그 고충과 애로를 타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 ‘민생’을 말하는 국가의 도리 아니겠는가? 선진국들은 탐정 직업화(탐정법)를 통해 이런 민생 수요에 답한지 오래다.

이럴진데 한국의 공인탐정법(안)은 민생법안 축에 한 번도 끼어보지 못한 채 14년째 뒷전에 밀려나기를 거듭하고 있다.

탐정에 대한 수요는 민생의 한 단면임을 더 이상 외면 말아야 한다. 선진국에서 하니 우리도 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궁금과 의문 해소에 그 유용성이 평가된 세계적 탐정제도 도입을 여전히 주춤거린다면 이는 ‘자신 있는 민생 국회’나 ‘유능한 정부’의 모습이라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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