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단축 D-10]부실한 가이드라인…노ㆍ사 불신만 키우는 근로시간 단축

- 제도 시행 불과 20여일 앞두고 정부 가이드라인 발표
- 애매모호한 가이드라인 탓에 공격 여지 맞아
- 근로시간 기준 관련 노사 합의 가능 부분에 대해서는 자율권 부여해야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어차피 기한 내에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데, 회사는 (직원들에게) 일은 전과 똑같이 시키고 돈을 적게 줘도 되는 상황이니 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모르겠다”(한 컨설팅업계 종사자)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근로시간’ 기준에 대한 부실한 가이드라인 탓에 기업과 근로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기준이 추상적인데다 직종ㆍ직군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며 결과적으로는 현장에서 노ㆍ사간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근로시간이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기업들은 근로자의 업무 효율성 제고에 집중하는 반면,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환영하면서도 업무강도 강화, 수당 삭감 등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제도 위반 시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 등 법이 강화되면서 일부 노조의 경우 기업에 대한 감시의 눈을 더욱 키우면서 제도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냉정한’ 셈법이 더욱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노동법, 노동경제, 노사관계 등 전문가들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로얄호텔에서 열린 정책자문위원회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포함한 노동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자문위원들로부터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단축 가이드라인 역시 일방적 설명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진=연합]

정부의 늦장대응…‘가이드라인’ 마저 모호=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가이드를 발간했다.

‘늦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내용마저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근로시간 기준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 감독 아래 종속돼 있는 시간’이다.

휴식 및 대기시간, 교육시간, 출장, 접대, 회식 등의 근로시간 포함 판단 기준은 판례 등을 적용했지만, 마찬가지로 ‘사용자 재량’이 핵심이다. 회식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고, 업무 연관성이 있는 접대나 대기, 교육 등은 사용자의 지시나 승인을 통해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근로시간에 대한 사용자와 근로자의 견해가 다른 만큼, 현장에서의 노사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다.

한 대기업 종사자는 “직원들이 업무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기업은 그렇게 생각지 않으면 명목상 근로시간만 맞추고 결과적으로는 추가 근무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가이드라인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시시때때로 회사와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업과 노조 간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기업이 52시간 근로기준을 어길 경우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 등 법이 크게 강화되면서다. 노조의 예민함도 크게 높아지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제도를 빠르게 정착시키고 싶지만 제도 자체가 빈틈이 많이 언제든지 (노조로부터) 공격의 여지가 있다”면서 “가이드라인 마저도 추상적이어서 어떤 부분에 대한 보안이 필요한 지도 모호하다”고 토로했다.

천편일률적인 ‘근로시간’ 적용…노사 갈등 부추길수도= 전문가들은 직군과 직무에 대한 고려없이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비스직ㆍ사무직 비중이 높은 현 노동시장에서 생산직 근로자의 근로 패턴에 맞춘 근로기준법 적용은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시간 제도를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국내 2300만명의 노동자들이 똑같은 옷을 입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제도의 전면 변화에 대해 준비가 덜된 상황에서 하나의 잣대로 노동제도를 끌고가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특히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합의해서 근로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명확하게 구분되는 근로시간을 제외하고, 그 외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일률적인 잣대가 아닌 노사 합의를 통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명확한 근로시간과 노사 합의가 필요한 시간에 대한 분류를 뚜렷히 해 법으로 강행할 부분만 기준으로 못 박고 나머지는 노사 자율에 맡길 필요가 있다”면서 “취업 규칙이나 노조가 있는 기업의 경우 단체협약 등을 통해 쟁점 부분에 대한 합의를 이뤄가면 부작용이나 갈등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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