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단축 D-11]저녁이 있는 삶?…“돈으로 저녁을 샀다”

- 중소기업 근로자 잔업수당 사라져 “지갑 닫을 것”
- 한국노동연구원 제조업 근로자 월평균 수입 13.1% 감소 전망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 “납기일이 다가와 일감이 몰리면 야근ㆍ주말근무하고 월 20만~30만원을 수당으로 받았는데 이젠 수당도 없이 나와서 일해야 할 판입니다. 일을 다 해내지 못하면 고과가 안 좋아지고 고용이 불안해지니까요.”(중소기업 A사원)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열흘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일부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돈으로 저녁을 샀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찾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각종 수당이 줄어들면서 월급봉투가 얇아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와대 청원게시판의 글쓴이는 “시급 생산직들 돈 줄여서 일자리 창출하는데, 그렇다면 공무원 증원할 때 (기존) 공무원들 급여 줄여서 했냐”고 비판한 뒤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기업 생산직 가장인 자신에게 고통 만을 안겨준다”고 한탄했다.

보일러 제조업체에 다닌다는 한 사원은 “한달 월급이 230만원이 채 되지 않는데 그동안 상여금이나 토요 특근으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해 왔다”며 “앞으로는 이 마저도 없어지게되는데 정말 이 정책이 국민이나 근로자들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 제조업 종사자의 월평균 수입은 296만3000원에서 257만5000원으로 13.1%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는 40만9000명이다.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는 대기업도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임금 감소에 대한 우려가 높다.

전자업계에 종사하는 한 근로자는 “하루 2~3시간 잔업하면 한달 30만원 이상을 교통비 명목으로 받았지만 7월부터는 주말ㆍ야간수당이 없어지면서 실질적인 급여가 줄어드는 꼴”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그동안 포괄임금제에 포함됐던 수당 문제가 향후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업계 연구직의 경우 그동안 주 40시간 외 추가잔업을 한다는 전제 하에 고정OT(초과근로수당)를 포괄임금제에 넣어 일괄지급해왔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는 7월부터는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노조 측에서는 앞으로 실근로시간을 체크해 잔업을 한 근로자에게만 고정OT를 주게 되면 임금이 감소하는 근로자가 발생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낼 지도 요원하다.

직원 450여명의 금형업체 간부는 고용을 늘리는 것은 언감생심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정부 취지는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고용을 늘리라는 것이지만 지금같은 불경기에 인원 충원은 힘들다”며 “그동안 높은 인건비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바쁠 때 밤샘근무로 납기일을 맞춰 고객사를 유지해 가능했는데 그마저도 힘들게 됐다”고 울상을 지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소비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한 중소기업 직원은 “잔업수당으로 그나마 근근히 버텼는데 당장 월 50만원 정도가 사라지게 됐다. 눈치 안보고 일찍 퇴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실질임금이 줄어오히려 돈을 안쓰게 될 것”이라며 “여유시간을 활용한 ‘투잡(Two Job)’을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외국인 노동자 쿼터제를 풀어줄 것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국내 노동자 고용창출과는 어긋나는 것이어서 정책적인 딜레마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소비 측면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하긴 힘들다”면서도 “가계 소득이 줄어들면 당연히 지출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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