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스토리①] 소장판사에서 ‘대한민국 로펌’ 법무실 실장까지… 이용구 변호사

-2003년 4차 ‘사법파동’ 주역… ‘서열 대법관 인사’에 반기 들어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으로 활약, 헌정사장 첫 파면결정 이끌어
-법무부 법무실 생긴 1967년 이후 첫 ‘비검사’ 실장… 법무행정 총괄
-“사법행정이 대법원 압도해선 안돼… 대법관 구성 다양화해야” 

19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이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좌영길기자@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2003년 여름, 최종영 당시 대법원장은 이근웅 대전고법원장, 김동건 서울지법원장, 김용담 광주고법원장을 대법관 후보로 추천했다. ‘대법원 구성을 다양화하라’는 법원 안팎의 요구를 외면한 채 서열에 따라 사법연수원 10~11기 법원장들로 인선을 한 결과였다. 당시 서울지법 북부지원의 이용구(54·사법연수원 23기) 판사는 대법원장의 재고를 건의하며 동료 법관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 판사가 법원 내부망에 글을 남긴 직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소장판사 100여명이 서명을 했고, 대법원은 “소수자 보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화시킬 능력을 갖춘 인물을 선임하겠다”고 약속했다. 15년 전 ‘연판장’을 돌렸던 이 판사는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를 거쳐 지금은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이 실장을 만났다.

이 실장은 법무실 업무를 “정부의 변호사”라고 말한다. 법무실은 정부 여러 부처에서 해야 할 법령 해석 자문을 맡는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투자자-국가간 중재(ISD)를 낸 것처럼 국가가 당사자인 법률분쟁을 총괄하는 한편, 최근 이슈가 되는 판문점 선언이나 북미회담 결과로 인한 남북 교류 관련 법률문제에도 조언하고 있다. 변호사 시험을 비롯한 법조인력 수급 관리와 비위 변호사 징계 등 법조시장 관련 업무도 맡는다. 그동안 줄곧 검찰 고위 간부가 맡았던 법무실장에 외부 인사가 영입된 것은 법무실이 생긴 196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단행한 ‘법무부 탈검찰화’의 시작이었다. “최근에 족발집을 운영하는 임차인이 건물주에게 상해를 가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검찰의 시각에서 보면 이분은 범죄자입니다. 하지만 법무행정의 시각에서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폭등으로 인해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문제된 전형적인 사건이에요. 물론 검사 출신 법무실장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겠지만, 다양한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이 임무를 나눠 맡는다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잘못된 대법관 인사 관행에 제동을 걸며 ‘4차 사법파동’을 주도했던 이 실장은 2013년 법원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가 다시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된 건 2016년 말 시작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을 맡으면서부터다. 이 실장은 당시 소추위원 측 대리인으로 나섰다. 수석대리인인 황정근 변호사 외에 소송경험이 많은 판사 출신 법조인이 필요했고, 지금의 집권여당인 민주당에서 먼저 대리인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다들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지 않습니까. 거리에 촛불을 들고 나왔고요. 국민이 분노하고 국회에서 탄핵 의결을 했어요. 결정은 재판관들이 내리지만, ‘밥상’을 차리는 건 대리인들의 몫이었어요.”

이 변호사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부분을 맡아 책임을 물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교적 명확했던 뇌물수수나 직권남용 혐의가 문제됐던 ‘비선실세 의혹’과는 달리 과연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시각도 있었다. “이론상으로 어려웠습니다. 괜히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세월호 유족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어요. 불안한 마음을 극복하려고 세월호 기록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심리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헌정사상 첫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다. 이 실장이 주장한 세월호 구조책임은 파면사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김이수, 이진성 두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이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선고 전날까지도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각하나 기각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용될 거라고 여겼거든요. 하지만 막상 선고날이 되니 긴장된 마음으로 법정에 도착했어요. 주문이 나오고, 두 재판관이 보충의견을 말씀하실 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국민의 안전이라는 게 전쟁이나 자연재해로부터의 안전을 의미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사회 내부에서의 안전, 사회적 재난이나 위험, 더 나가서 먹을 것과 입을 것 등 기본생활과 관련된 안전도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국민이 국가의 보호의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까지 바라는 흐름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 실장은 ‘소장판사’로 이미지가 굳어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법무부에서 일하며 ‘친정’인 법원 일을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다. 다만 15년 전에 지적했던 대법관 인선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재판거래 의혹’까지 불거진 데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법원은 좋은 판결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게 법원의 존재 이유죠. 법원 판결을 이끄는 게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요. 대법원 전원합의체게 좋은 판결을 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구성이 다양해야 하고요. 대법관들이 토론하고, 다수의견에서 안도감을 찾는 국민과 판사가 있고, 소수의견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법원장이 되고, 법원장이 대법관이 되면 인사라는 사법행정이 대법원을 만들게 돼요.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는 그래도 ‘독수리 오남매’라고 불리는 분들이라도 계셨잖습니까. 하지만 제도적으로 뒷받침됐던 게 아니라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죠. 결국은 사법행정이 대법원을 압도하는 현상이 생긴 겁니다. 입법과 예산을 다룬다는 것은 정치권을 상대로 타협과 양보하는 영역의 일입니다. 재판 권한을 가진 판사가 입법과 예산에 계속 관여했던 것이 재판거래 의혹까지 생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법원은 신뢰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는 법원 뿐만이 아니라 법조직역 전체가 사회적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조인은 ‘프로페셔널’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프로페셔널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통용되지만, ‘앞(pro)’과 ‘고백한다(fession)‘는 뜻이 결합된 말이에요. 의사나 목사처럼 사람 앞에서 고백을 듣는 역할을 하는 게 법조인이에요. 법률적인 비밀을 듣는 거죠. 전문적인 지식이 많고 적고의 문제보다 그만큼의 신뢰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변호사로 다양한 사건을 경험한 그는 ‘신뢰’ 외에도 법조인 업무의 공익성을 강조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사법연수원 교수를 할 때 법조윤리를 가르쳤어요. ‘변호사가 사업가지, 왜 공익적인 직업이냐’고 질문하는 연수원생도 있었어요. 목사는 신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체가 공익이고,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공익이에요. 반면 분쟁 당사자의 한 쪽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하는 일 자체는 공익이 아닐 수는 있겠죠. 의뢰인과의 관계가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변호사는 특별히 국가에서 면허를 주기 때문에 독점적으로 법정 변론을 하고, 수사 검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변호사가 자기 직업의 공익성을 잊어버리면 법적 지식은 사회에서 독약이 될 수 있거든요.”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은

▷대원고,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 23기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대법원 양형위원회 운영지원단장 ▷서울고법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 ▷법조공익단체 나우 이사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 ▷법무부 법무실장(현)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위원(현)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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