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AS]유니폼도 결국 실력이다


[헤럴드경제 TAPAS=정태일 기자]“정말 나이키 너무하네요”

“나이키는 Korea를 호구로 취급하고 있다는 팩트”

“2년간 긴밀하게 협의했다는 게 고작”

지난 3월 우리나라 국가대표 유니폼이 공개됐을 때 나이키 홈페이지에는 축구팬들의 날선 지적이 쏟아졌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유니폼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축구 유니폼은 선수들이 입는 진품(authentic)과 가격 부담을 낮춰 일반에 판매되는 가품(replica)으로 나뉜다. 디자인은 거의 똑같지만 재질과 기능 면에서 진품과 가품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팀은 일반 판매품 수준의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으니 축구팬들의 애국심에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이퍼니트 VS 드라이피트

나이키가 발표한 2018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 키트에 따르면 나라별로 유니폼 기본 소재가 다르다. 

브라질 유니폼. 베이퍼니트 주요 기능 부위를 ‘ㅇ’로 표시했다 [출처=나이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브라질,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나이지리아, 폴란드 등은 ‘패스트 핏 베이퍼니트 키트(Fast Fit Vaporknit kits)’를 바탕으로 한 유니폼을 입는다.

나이키는 베이퍼니트 유니폼의 강점을 5가지로 정리했다.

1. 이전 모델보다 64% 가벼워졌고, 나이키 사상 최고의 통기성을 자랑한다.
2. 통기성이 최상인 덕분에 공기가 드나드는 배관(duct-like) 기능이 들어가 있다. 이 효과로 옷이 몸에 달라붙는 것도 최소화할 수 있다.

3. 가슴과 등에 촘촘히 뚫려있는 미세한 구멍들은 축구선수들의 땀과 열이 잘 배출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포르투갈 유니폼 가슴, 등에 있는 미세한 구멍들 [출처=레플리카룸]
포르투갈 유니폼 가슴, 등에 있는 미세한 구멍들 [출처=레플리카룸]

4. 여기에 소매는 윤기나는 마감으로 처리돼 미적 가치를 더욱 높이기까지 했다.

5. 하의는 마찰을 줄여 활발한 움직임을 극대화했다.

잉글랜드 유니폼. 베이퍼니트 주요 기능 부위를 ‘ㅇ’로 표시했다 [출처=나이키]

반면 이런 강점의 베이퍼니트를 입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 바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이런 나라들 국가대표 선수들은 드라이피트(Dri-Fit) 기반의 유니폼을 입는다. 드라이피트도 분명 나이키가 자랑하는 기술이기는 하다.

하지만 베이퍼니트 유니폼의 통기성과 활동성은 드라이피트보다 월등히 높다. 국내 축구팬들이 우리나라 유니폼을 ‘보급형’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가격에서도 베이퍼니트는 드라이피트의 거의 2배다. FIFA스토어에서 판매되는 브라질 유니폼 상의는 같은 디자인이라도 베이퍼니트 소재가 164.99달러인 반면 레플리카용인 드라이피트 소재는 89.99달러다.

무게 차이도 있다. 국내 최대 레플리카 업체 레플리카룸이 무게를 비교한 결과 베이퍼니트 소재 유니폼이 드라이피트보다 40g 더 가벼웠다.

철저한 비즈니스 논리

국내 축구팬들은 나이키의 유니폼 정책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지만, 유니폼 시장 관계자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팀 유니폼. 드라이피트 소재다 [출처=나이키코리아]

선수용 유니폼이나 일반 판매용 모두 상품이다. 상품은 잘 팔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용 유니폼이 잘 팔리려면 그 나라 성적이 좋아야 한다. 국가대표 성적이 안좋은데 비싸고 질 좋은 선수용 유니폼을 만들기만 하면 잘 팔릴까. 우리나라 선수들이 베이퍼니트보다 낮은 등급의 유니폼을 입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 포르투갈, 잉글랜드, 프랑스 등은 모두 정상급 실력을 갖춘 나라들이다. 크로아티아, 폴란드도 만만치 않은 강팀에 속한다. 한국은 2002년 정점으로 하향세다. 이번 월드컵 첫경기에서 패해 조별리그 생존 가능성도 더욱 낮다. 낮은 질의 유니폼은 결국 그 나라 대표팀 실력이 반영된 결과기도 하다. 공교롭게 사우디아라비아도 개막전에서 0대 5로 대패했고, 호주도 프랑스에 패하고 말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유니폼. 역시 드라이피트 소재다 [출처=나이키]

실력보다 더 무서운 경제력?

이런 이유라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다. 그런데 월드컵에 나가지도 못한 중국이 우리보다 상급 유니폼을 입는다면?

사실이다. 중국 국가대표들도 베이퍼니트 기반 유니폼을 입는다. 이유는 단 하나다. 중국이 아시아 최대 축구 시장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실력보다 시장의 경제력이 더 크게 반영된 현상이다. 

중국 국가대표 유니폼. 브라질, 포르투갈 등 강팀과 같은 소재다. 역시 ‘ㅇ’로 주요 기능을 표시했다 [출처=나이키]

나이키는 홈페이지에 중국에 대해 ‘fastest-growing football nations in the world(세계에서 축구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실제 아시아 축구 시장 중심축도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평가다. 유니폼 시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나이키가 중국 프로리그와 일괄 계약하면서 중국 시장 비중이 매우 커졌다. 나이키가 중국 대표팀에 최상급 유니폼을 제공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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