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금융, ‘특례’보다 ‘소비자’가 먼저다

‘독서망양(讀書亡羊).’ 국회가 각종 특례법 추진에만 몰두하다 정작 중요한 금융소비자보호라는 대의(大義)를 놓치고 있다.

오는 24일 열리는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등이 논의된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회는 적어도 21일 정무위 전체회의와 30일 임시국회에서 금소법을 다룰 생각이 없는 것이다.

여당을 비롯한 정치권과 청와대는 최근 고용 등 경제지표가 악화하면서 민심 되돌리기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당연히 ‘성장’이 앞에 섰다.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기업을 살리고, 혁신과 도전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중요하다는 안의 목소리가 더 컸다. 소비자는 뒷전에 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정무위 업무보고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금융혁신지원특별법’, ‘금융소비자보호법’,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입법 등에 대한 위원님들의 고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지만 언급한 4가지 법 중 금소법만 빠졌다.

정작 국회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금융당국은 기업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되돌려받고 싶은 금융소비자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나서 삼성생명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은행 대출금리가 높게 책정돼 이자를 더 많이 내고 있었는데도 차주가 이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삼성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유령주식’ 매도로 주가에 영향을 미쳐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안겼다.

금융당국은 업권 자율의 ‘모범규준’을 통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나서고 있다. 법이 없어 현안마다 모범규준을 만들고 대응할 따름이다. 업권 자율이라 강제성도 없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5월 취임하면서 금감원의 정체성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앞세웠다. 칼자루를 너무 크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냐는 업계의 목소리도 있었다. 법적근거가 모호한 까닭이다.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입법을 호소하고 대응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은 20일 정책의원총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입법을 위한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서 의원들끼리 설전을 벌였다. 긴 설전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산업자본의 지분율 제한을 25~34% 내에서 정하기로 하고 다음 의총에서 다시 이를 논의하기로 했다.

금융소비자 보호보다는 은산분리 완화에 대한 당내 입장을 선회를 위해 홍역을 치르는 과정이었지만 이 와중에 짚어볼만한 발언도 있었다.

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기업에 창을 주면 소비자에게는 방패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소법 입법 등으로 소비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국회도 할 말은 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여야가 마련한 민생경제법안TF(태스크포스)에서 3당 지도부가 합의한 법안들을 먼저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촉법은 지난 6월 시한이 만료돼 시급히 처리가 필요하고 인터넷전문은행 특별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챙기는 법안이다. 혁신지원법까지 각론에선 다르나 여야가 한 방향을 바라보는 법안이다.

24일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30일 임시국회까지 시간도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점도 있다.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으니 다 다룰수는 없고 우선순위대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금소법은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소비자 역시 기업의 후순위가 된 셈이다.

금융소비자 보호 관련 법안은 정부 발의안 1건과 의원 발의안 4건 등 총 5건이다.

이 가운데 정부 발의안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만들어져 이번 정권 초기인 지난해 5월 23일 국회에 올라왔다. 지난해 하반기는 꾸준히 안건으로 상정됐으나 올 상반기는 정기국회가 열리지 않아 다뤄지지 않았다.

다른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보통 정부입법은 정기국회에서 논의한다. 금소법도 9월 다음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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