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배롱나무 꽃 같은 법조인이 되기를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작은 공원이 있다.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인생사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맘때쯤에는 푸른 신록 사이에 진분홍의 배롱나무 꽃이 만발한다.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는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사라지고 난 늦여름쯤에 조용히 피어나는 겸손한 꽃이다.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화려한 목련도 영원할 것 같지만 한순간이다. 성급하게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개나리도 지천을 노랗게 물들이지만 잠깐이다. 배롱나무 꽃 한 송이는 결코 화려하지 않으며, 여름 나무들 사이에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거의 백일가량 꽃을 피운다. 그래서 엄격히 따지면 다른 종자이지만 흔히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배롱나무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봄꽃에 비하여 영 초라하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조그만 꽃잎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풍경이 탄성을 자아낸다. 파란 여름 하늘과 푸른 신록 사이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진분홍의 아름다움은 저절로 핸드폰 카메라에 손이 가게 만든다. 변호사인지라 배롱나무 꽃을 보면서 법조인들이 생각난다.

법원행정처라는 꿈의 무대에서 화려하게 근무한 후 지법부장판사, 고법부장판사로 꽃길을 걷다가 법원장이나 대법관이 되는 판사들이 있다. 서울중앙지검이나 대검, 법무부 등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권력의 눈도장을 찍는 검사들이 있다. 전관예우를 받으면서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는 변호사들도 있다.

그러나 판사가 본연의 재판업무 대신에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재판거래의 조력자가 되었다면, 검찰이 엄정한 정의실현이 아니라 개인의 출세를 위하여 권력에 줄을 대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기획수사라는 칼자루를 휘둘렀다면 그 폐해가 심각하다. 모두 자신이 영원히 피는 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비 오면 한순간에 지고 마는 목련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법원행정처 근무는 언감생심이고 지방을 돌면서 재판업무만 하는 훨씬 다수의 판사들이 있다. 특수통이니 공안통이니 하는 요직을 거치지 못하고 형사부나 조사부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검사들이 있다. 전관예우라든지 고액의 수임료는 남의 이야기이고 적은 수임료를 받으면서도 의뢰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서류로 둘러싸인 비좁은 사무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변호사들이 있다. 모두 법조계의 백일홍 같은 존재들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남용으로 촉발된 전대미문의 사법부 불신 사태를 거치면서, 권력에 부역하였던 검찰출신들에 대한 준엄한 단죄를 지켜보면서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백일홍 하나하나는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모이면 숨이 탁 막히도록 아름다운 진분홍 빛을 뿜어낸다. 누가 더 오래가는지 시간이 가르쳐 준다.

우리가 화려함에 빠져 무심히 간과하였을 뿐이지 꽃들은 매년 우리에게 경고하였다. 지금 사법개혁을 이끄는 법조계의 주역들은 모두 겸손하게 때가 오기를 기다리던 백일홍 같은 존재들일 수 있다. 하지만 꽃들이 전하는 가르침을 무시하고 스스로 한순간 화려한 목련이나 벚꽃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처음 가졌던 마음처럼 함께 모였을 때 아름다운 배롱나무 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아름다움이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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